세계 최고 권위의 골프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가 열린 지난 10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의 11번홀 그린 주변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백발이 성성한 노장 프레드 커플스(미국·사진)가 그린에 올라서자 스탠드와 캠핑의자에 앉아 있던 갤러리 1000여 명이 일제히 일어선 것. 그들은 “프레디”(커플스의 애칭)를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커플스는 올해 나이 63세 182일로 이번 대회 커트 통과에 성공해 2020년 베른하르트 랑거(독일)가 세운 최고령 커트 통과 기록(63세 78일)을 새로 썼다.

커플스는 최종 라운드에서 5오버파를 쳤다. 최종 합계 9오버파 297타, 공동 50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갤러리들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들뻘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은 커플스의 자기 관리에 환호했다.

커플스는 이번 대회에 1992년 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했다. 마스터스에는 해당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대회 우승자, 세계랭킹 상위 50위, 역대 마스터스 챔피언 등 90명 정도만 참가할 수 있다. 커플스처럼 역대 챔피언(2004·2006·2010년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필 미컬슨(53)은 이번 대회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령 톱5 기록을 세웠다. 그의 세계랭킹은 213위로, 과거 우승이 없었다면 마스터스 출전은 불가능했다.

역대 챔피언에게 출전자격을 주는 건 ‘마스터스 정신’ 중 하나인 ‘전통에 대한 존경’에서다. 대회 시작 전날 전년도 우승자가 역대 챔피언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챔피언스 디너’를 여는 것이나 잭 니클라우스(83), 게리 플레이어(88), 톰 왓슨(74) 등 ‘골프 전설’들의 시타로 대회 시작을 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스터스 상금 규모(1800만달러)가 플레이어스챔피언십(2500만달러)보다 적은데도, 모두가 마스터스를 더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하는 건 이처럼 모방하기 힘든 전통과 유산 덕분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서른 살만 넘어도 선수 이름 앞에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자 선수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이를 낳은 여자 선수가 20대 초반 선수들과 경쟁하는 장면은 ‘희귀 영상’이 된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2021년 영구 시드권 자격을 종전 ‘KLPGA투어 20승 달성자’에서 ‘30승 달성자’로 바꿨다. 45년 역사의 KLPGA투어에서 30승을 달성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영구 시드권을 안 주겠다는 의미”란 평가가 나온다.

서른만 넘어도 '노장' 취급…한국에선 프레드 커플스가 나오기 힘든 이유
마스터스 대회 기간, 제주도에선 KLPGA투어 개막전(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이 열렸다. 영구 시드권을 갖고 있는 ‘골프맘’ 안선주(36)는 이 대회에서 공동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베테랑들의 연륜이 더해질 때 대회가 한층 더 풍성해진다는 걸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프레드 커플스가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