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말 수송 통로' 해남 이진성지 국가사적 지정 추진
조선시대 전남 해남과 제주의 출입통제소로 제주말을 수송하던 통로였던 이진성지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이 추진된다.

해남군은 최근 이진성지 발굴 조사 자문위원회 및 현장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진성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마을을 둘러싼 석성으로 전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돼 있다.

성벽 길이는 940여m, 남북의 구릉지를 이용해 축성한 남북장축의 타원형 진성으로 해남에 남아있는 여러 성 중 가장 완벽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선조 21년(1588년) 진을 세웠으며 300여년간 해안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군은 설명했다.

1597년 8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진도 벽파진으로 이동 중 이진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장군샘과 역대 수군만호에 대한 공적비 4기가 있다.

이진성은 제주도에서 말과 공물을 수송하던 포구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진성지의 동쪽으로는 달도와 완도가 있는데 예전 제주도 출입통제소였으며, 제주말을 싣고 오는 배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제주돌을 싣고 와 말을 내린 후 이 마을에 돌도 내려놓았다고 한다.

'제주말 수송 통로' 해남 이진성지 국가사적 지정 추진
지금도 구멍 뚫린 현무암 제주도 돌을 돌담이나 정원 막음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현재 마을을 출입하는 통로가 되는 서문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축조방식과 옹성부,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초석의 존재를 확인했다.

성벽의 축조 방식과 성벽 외부방어시설인 치성도 발견했다.

너비 3m의 서문지는 둘레 34m, 높이 5m, 너비 2.2m의 옹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주로 자기류와 기와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조선 중기 지방백자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데, 16세기 말∼17세기 초 주로 보이는 지방백자인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활발한 성내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결과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국가사적 지정 등 체계적인 관리와 복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남군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며 훼손 정도가 심해져 객사와 건물지 등에 대한 추가 학술조사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의견을 종합해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