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에 ‘짧은 이야기’의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 2월 성황리에 막을 내린 뮤지컬 <이프덴>, <여신님이 보고 계셔>나 지난 3월 첫 선을 보인 뮤지컬 <식스>, 오는 연말 초연 예정인 <컴프롬어웨이>가 그렇다.
에피소드처럼 '짧고 굵은 뮤지컬'이 뜬다
하지만 여기서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혹은 5~30분 이하의 웹 드라마 같은 스낵 콘텐츠처럼 러닝 타임 자체가 짧은 뮤지컬에 관해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의 경우 규모와 스타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반가량 공연되기에 서사의 길이 자체는 웹 드라마나 TV 드라마의 한 화보다 훨씬 길다.
그렇다면 뮤지컬 신에 바람을 일으키는 소위 짧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그것은 뮤지컬의 본래 러닝 타임은 유지하되, 그 안에 여러 가지 짧은 이야기를 꿰어 만드는 것, 즉 ‘짧은 호흡’의 서사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짧은 호흡의 서사구조는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그 단초는 일단 ‘삽화적 구성(Episodic Plot·에피소드식 구성)’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삽화적 구성이란 일반적으로 극적 구성(Dramatic Structure)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극적 구성은 서사 전체가 인과적 연속성으로 이어져 모든 사건이나 행동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다.

삽화적 구성은 각각의 독립적인 의미와 형식으로 구분되는 일련의 사건들, 곧 삽화들이 결합하여 통합체를 이룸으로써 각각의 삽화가 그 자체로서의 독립성과 통합체에로의 종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삽화적 구성의 TV 드라마에서 매화 에피소드의 독립성이 강해질수록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005~2006)나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에, 종속성이 강해질수록 신원호 PD의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2012~2016)나 <슬기로운...> 시리즈(2017~2021)에 가까워진다.

에피소드의 독립성이 강한 시트콤의 경우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라는 본디말에서 알 수 있듯 동일한 인물이 매회 맞닥뜨리는 새로운 상황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전편을 보지 않아도 본편을 이해하는 데에 거의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극적 구성을 기반으로 삽화적 구성을 믹스 매치한 신원호 작품의 경우 전편의 관람 없는 본편의 온전한 감상은 어려울 수 있다.

매화 배치된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도 높은 독립성을 지니지만 주요 인물들 대부분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각자의 일관된 목표를 좇아 드라마 전체의 긴 서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신원호의 작품들은 ‘에피소딕 드라마(Episodic Drama)’로 볼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매회 다른 사건이나 문제를 해결하며 스토리를 완성하는 추리물이나 수사물이 이 장르로 분류돼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에피소딕 드라마 중에서 삽화(Episode)보다 극(Drama)의 성질이 더 강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한편,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 <더 글로리>(2022~2023)는 어떨까?

모두 전편 없이 본편을 온전히 즐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정통 ‘드라마’이다.

인물들의 행동은 전편의 행동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추동되고 본편의 행동이 다음 편의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구조, 즉 극적 구성으로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장에서 삽화적 구성의 성질을 지닌 뮤지컬은 무엇이 있을까?
에피소드처럼 '짧고 굵은 뮤지컬'이 뜬다
그 역사적 시초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독일 작품 (1986)을 번안하여 극단 학전이 제작하고 김민기가 연출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작품은 연변 처녀 선녀가, 백두산 관광길에 자신과 만나 결혼을 약속한 제비를 찾아 서울로 오면서 시작한다.

선녀는 지하철 1호선에서 청소부, 노숙자, 창녀, 포주, 정치인, 강남 아줌마 등 시대상을 반영한 수많은 인간 군상과 만나며 쉴 새 없이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거쳐 간 것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1994년 대학로 초연 이래 꾸준한 인기로 20년 넘도록 통산 4,000회 이상 공연하는 입지전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기념비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200~300석 소극장 규모에 비해 큰 열한 명의 배우, 다섯 명의 연주자 구성으로 상업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보였던 탓인지, 혹은 ‘뮤지컬이란 그저 노래가 나오는 연극’ 정도로 인식되던 시기부터 우리 곁에 상존하여 브랜드 피로감을 주었던 것 때문인지 아이러니하게도 후대 뮤지컬 제작자들이나 창작자들의 롤 모델이 되지는 못한 듯하다.

2004년에는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러브유>(1996)가 초연되었다.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 하에 첫 만남, 연애와 이별, 결혼과 권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스무 개에 달하는 에피소드로 엮어 보여준다.

초연 당시 위트 넘치는 대사와 완성도 높은 음악, 배우들의 호연으로 7개월에 달하는 긴 공연 기간 동안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중소 뮤지컬 흥행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러브유>의 성공 이후 시장에 쏟아진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들은 <김종욱 찾기>(2006), <싱글즈>(2007), <미녀는 괴로워>(2008) 등 대부분 극적 구성 형식이었다. <아이러브유>의 바통을 이어받은 삽화적 구성의 작품은 2008년 국내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컴퍼니>(1970)였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뉴욕의 미혼 독신남 로버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 그를 축하하러 모인 다섯 쌍의 부부와 그와의 관계, 그리고 지난 세 명의 여자 친구와 함께 했던 그의 기억들을 인과관계없이 나열한다.

도시인, 결혼, 관계 맺기 등의 화두를 일련의 에피소드들로 풀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완성도 있는 음악과 가사에도 불과하고 결혼에 대해 ‘굳이?’라고 되묻는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있던 탓인지 아직 결혼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당시 한국 관객의 입맛에는 다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2010년 국내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엣지스>(2007)는 뮤지컬 <디어 에반 한셀>, 영화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 등의 작가들인 파색 & 폴의 초기작이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위태하고 쉽게 자리 잡지 못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일과 사랑,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본래 대사도 없고 곡과 곡사이의 유기적인 연관성도 딱히 없는 연가곡(Song-cycle) 형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대본을 새로 썼고, 네 명의 출연진이 관객의 사연들을 곁들여가며 풀어냈다.

아름다운 넘버, 객석과의 쌍방향 소통 방식으로 당시 대학로 공연 마니아들의 호응을 얻었으나 이후 재연되지 못했다.

이렇듯 <지하철 1호선>부터 <엣지스>까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주목할 만한 삽화적 구성의 뮤지컬들은 소기의 성과는 이루었을지 몰라도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며 그 외연을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각자 저마다의 요인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의 성향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관객의 니즈를 반영하여 극적 구성의 기반 위에 삽화적 구성을 덧댄, 소위 ‘에피소딕 뮤지컬(Episodic Musical)’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2009년 임도완 연출, 이수연 극작의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핀란드 소설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삶의 의욕을 잃고 각자 자살을 계획하던 열두 명의 인물들을 다룬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 알게 되고 집단 자살 여행 버스에 오른다.

여행 중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차례대로 펼쳐지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행동들이 다음 행동을 연속적으로 추동하여 결국 각자 품었던 자살의 결심은 삶의 희망으로 바뀌게 된다.

작곡가 이지수가 한국뮤지컬대상 작곡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자살 소재에 대한 관객의 선입견과 심리적 장벽을 허물지 못하여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에피소딕 뮤지컬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은, 2013년 초연한 박소영 연출,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의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부터였다.
에피소드처럼 '짧고 굵은 뮤지컬'이 뜬다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수상의 이 작품은 지난 3월 1일 10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종료했다.
초연 포함 총 일곱 번의 프로덕션은 매번 상업적, 예술적 성공을 거두며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작품은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 포로 네 명과 국군 두 명이 탄 이송선이 포로수용소로 항해하던 중 인민군의 폭동과 기상악화로 고장 나고, 여섯 모두 결국 무인도에 고립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송선을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인민군 류순호 뿐이나 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 국군 대위 한영범은 우선 ‘여신님’ 이야기를 만들어 순호를 안정시키고, 국군과 인민군은 우여곡절 끝에 가상의 ‘여신님’과 함께 무인도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여섯 명 각자의 숨겨왔던 사연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전쟁 중 적군과 함께 무인도에 표류하고, 힘을 합쳐야 탈출할 수 있다는 상황이 에피소드들을 한데 강하게 묶는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다섯 번째 프로덕션이 막을 내린 2018년, 이 작품처럼 에피소드들이 극적 구성의 강력한 틀 안에 녹아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2013)의 라이선스 초연이 올라갔다.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인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9년 런던, 낮은 신분에 돈도 직장도 없던 청년 몬티가 어머니 유품에서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코미디이다.

몬티는 백작의 지위에 올라 사랑도 얻고 어머니의 숙원도 이루기 위에 자신 앞의 여덟 명의 후계자들을 제거해 나가고, 그에 따라 각각의 에피소드가 쉴 틈 없이 전개된다.

특히 제거 대상의 후계자들은 모두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여 마치 죽어도 죽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관객은 심지어 작품이 삽화적 구성의 성질을 띠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초연부터 큰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2020년 재연, 2021년 삼연을 거치며 시장에 안착했다.

2022년 초연을 시작하여 지난 2월 성황리에 막을 내린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프덴>(2014) 역시 에피소딕 뮤지컬이다.

작품은 서른아홉 살,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위해 십 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중고 취준생’ 엘리자베스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삶은 ‘리즈’와 ‘베스’의 두 가지 세상으로 평행하게 갈라진다.

리즈는 주로 사랑과 결혼, 가정과 인간관계에, 베스는 주로 직장과 승진, 성공과 자아실현에 중점을 둔 여로를 걷는다.

관객은 엘리자베스를 연기하는 주연 배우에게 감정을 이입하기에 한 인물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인물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며 두 가지 서사의 변곡점마다 파생되는 서로 다른 사건들의 궤적을 따라가게 된다.

많은 관객들이 ‘넷플릭스에서 미드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남겼을 만큼 풍성한 에피소드가 시종일관 관객을 자극하고 내면에 울림을 준다.

올해 한국 시장에 선 보이는 에피소딕 뮤지컬

지난 3월 최초 내한공연과 라이선스 공연을 연이어 선보인 웨스트엔드 뮤지컬 <식스>(2019).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토니상 음악상과 의상상을 수상했을 만큼 쉽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의상이 일품이다.
에피소드처럼 '짧고 굵은 뮤지컬'이 뜬다
이 작품은 영국 왕 헨리 8세가 맞이했던 여섯 부인들의 삶을 팝 콘서트 무대 위에서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같은 남편을 두었던 여섯 여왕들은 헨리로 인해 가장 고통받은 이를 그룹의 리드 싱어로 뽑기로 하고, 차례로 돌아가며 자신들의 사연을 노래한다.

<젠틀맨스 가이드...>나 <이프덴>이 한 명의 주인공을 축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꿰어내고 있다면, <식스>와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각각 콘서트 무대와 무인도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여섯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식이다.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 올리비에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컴프롬어웨이>(2017)도 올 연말 라이선스 초연을 앞두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기를 납치하여 뉴욕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9.11테러 직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은 영공 전체를 봉쇄했다.
<컴프롬어웨이>는 이로 인해 미 영공에 떠 있던 비행기 수십 대가 캐나다 뉴펀들랜드주의 작은 섬, 갠더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진 실화를 다룬다.

열두 명의 배우들은 공연 내내 시계태엽처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비행기 사람도 되고 갠더 시민도 된다.

배우 열두 명이 마흔 개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아예 없다. 대신 테러로 인해 낯선 곳에 불시착했다는 공통된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에피소드가 빠르게 펼쳐진다. 그리고 에피소드 각각의 작은 서사들은 공연 끝에서 모두 매듭지어진다.

<식스>와 <컴프롬어웨이> 모두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예술적, 상업적으로 성공하였기에 이후 한국 시장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뮤지컬에서는 여전히 긴 호흡으로 한 가지 중심 사건에 집중하는 극적 구성의 거대서사, 즉 ‘뮤지컬 드라마(Musical Drama)’가 일반적이다.

집 소파에 편히 기대어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큰 지출 없이, 일상적으로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의 시청자와 뮤지컬 관객의 소비 양태는 다르다.

일상에서 벗어나 극장 왕복 한 시간 이상, 5~15만 원을 넘는 티켓값을 투자해야 하며, 배우의 출연 일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춰야만 하는 뮤지컬의 관객은 그 보상으로 충분한 시간 동안 보다 커다란,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사의 찬미>,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리지>, <더 데빌> 등의 소극장 작품부터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프랑켄슈타인>, <영웅>, <데스노트> 등의 대극장 작품까지 그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들이 이를 방증한다.

짧은 호흡, 긴 서사의 에피소딕 뮤지컬이등장하기 시작했을까?

이 글은 그 답의 힌트를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의 성공에서 찾고자 한다.

한 가지 중심 사건으로 16부작 이상을 끌고 가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집중해서 봐야만 했던 시청자들에게 위 작품들은 일종의 센세이션이었다.

매화 새로운 에피소드의 독립성이 도드라지면서도 전체 서사의 일관성과 완결성은 유지되었기에, 시청자는 매화 집중과 이완을 적절히 반복하며 드라마 전체를 마지막 화까지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2012년부터 2016년에 걸쳐, 후자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방영되었다.

이후 드라마 산업은 빠르게 성공의 비결을 체득한 듯 극적 구성의 기반 위에 삽화적 구성을 덧댄 에피소딕 드라마들, tvN <시그널>(2016), SBS <하이에나>(2020), 넷플릭스 <소년심판>(2022),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등을 내놓았다.

그리고 뮤지컬 신에서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2013년, <젠틀맨스 가이드...>는 2018년, <이프덴>은 2022년에 국내 초연되었다.

올해에는 <식스>가 포문을 열었고 <컴프롬어웨이>가 뒤를 잇는다. 대중매체를 통해 드라마의 맛에 먼저 익숙해진 관객들이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어려서부터 스마트 기기 사용을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소위 Z세대는 더욱 주목해야 한다.

5분~10분의 숏폼, 20~30분 정도의 미드폼 웹드라마 같은 콘텐츠에 익숙한 이 세대는 기존 문법의 60분 길이 드라마는 스킵 해서 보곤 한다.

줄거리를 이해하거나 중요한 장면만 놓치지 않는 정도의 시간 이상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원호는 바로 이런 Z세대의 짧은 호흡을 기존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12~16 부작의 긴 서사에 접목해냄으로써 시청자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극적 구성의 기존 뮤지컬과 러닝 타임은 비슷하되, 그 안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채워가는 에피소딕 뮤지컬의 출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고,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 중 가장 대중성이 큰 드라마의 호흡이 빨라진다는 것은, 공연예술 중 가장 대중성이 큰 뮤지컬의 호흡 역시 빨라질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Z세대가 30~40대가 되는 시점도 멀지 않았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폭풍이 되듯, 문화 예술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끝은 창대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짧은 호흡, 긴 서사의 에피소딕 뮤지컬 바람이 해외 라이선스 작품에서뿐 아니라 우리 창작 뮤지컬에서도 일고 있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우리 뮤지컬 신에 에피소딕 뮤지컬의 새로운 도전이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뮤지컬 시장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