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팝 아트'의 환각제적 속성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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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심상용의 이토록 까칠한 미술
2023년 2월, 앤디 워홀의 시대가 프랑스 출판사 아르마탱에서 출판…. 이 출판의 의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될 수 있다.
첫째는 서구 미술의 늦깎이 수용에서 출발한 한국 이론가의 서구현대미술 읽기가 서구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 비서구 변방의 피상적이거나 편협한 독해로 간주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도 파리 쪽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서구 미술의 조류와 그에 관한 미술사 연구 장에 새로운 성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평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였다. 파리 8대학의 미학자 프랑수아 술라주(Francois Soulage) 교수는 나의 관점과 시각에 깊이 공감하는 취지의 긴 서문을 기꺼이 써주었다.
다음은 술라주 교수의 서문 가운데 발췌한 일부다.
본 저서는 우리 목전에서 전개되는 스팩터클에 대한 우리의 수동성에서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예술 이미지의 소비의 방향이 아니라, 예술과 예술을 둘러싼 것에 명시적으로, 특히 암묵적으로 우리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말이다.
또한 본 저서는 "우리가 생각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예술 작품에 민감해지도록 한다.“(p.10)
l’Ere d’Andy Warhol’ 의 프랑스 출판이 지니는 둘째 의미는 조금 사적인 것이다. 자기 이름의 책을 출판하는 것도 자주 부빌없는 욕망의 일환이다. 어느덧 이 정도는 알 나이가 되었다. 다섯 권의 학위 논문에 열댓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면서다.
첫 번째 책이었던 『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현대미학사)이 25년 전인 1999년에 출판되었고, 이후 『그림 없는 미술관』(2000), 『천재는 죽었다』(2003), 『속도의 예술』(2008)이 각기 다른 제법 큰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모두 단명해, 어느 하나도 재판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시장 미술의 탄생』의 출판을 둘러싸고선 생각이 복잡해졌다. 상업적 성과야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다.
이 가난한 동네에서 글을 써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반응도 예컨대 미디어에 소개되거나 일정한 판매 부수가 꾸준히 지속되거나 등의 통상적인 잣대로 보면 대체로 신통치 못했다.
『시장 미술의 탄생』(2010)은 이 질문에 대해 적어도 나에게는 일정부분 답을 해준 사건이었다. 『시장 미술의 탄생』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술시장을 넘어 창작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집필이 시작된 원고였다. 21세기 예술의 급진적인 변화와 변형의 상황과 진단, 분석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자료 수집을 위해 프랑스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책이 출판되자 초기의 반응은 나름 뜨거웠다. 판매실적 상의 부진함을 넘어 서는데 보탬이 되는 종류의 반응은 물론 아니었다. 출간 초기에는 일간지를 포함한 적지 않은 매체들에서 기사화되고, 저자 인터뷰도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은 시점에 출판사의 절판 결정이 내려졌고,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팔리지 않는 책의 저자에게 항변은 주어지지 않는 권리겠지만, 내 셈으로는 너무 이른 절판이었다. 절판된 이후로도 한동안은 책의 구매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나 메일이 내게 왔다. 이 너무 이른 절판 사건은 내게 나의 모욕감, 자책감, 열등감 보다 더 절박한 문제로 나를 이끌었다.
팔리지 않는 책, 구매력과 동 떨어진 지식, 유행을 타지 않는 생각을 위해서는 단 한 평의 땅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 지식의 전체주의, 미래 세대 다양성의갈취(喝取)와 억압...
그 즈음 이후로도 나는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책을 출판했다. 심지어 대안적 성격의 계간잡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Contemporary Art Journal)’를 창간하기까지 했다. 2009년에 창간준비호를 낸 이 잡지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27호까지 내고 현재는 휴간-폐간에 가까운- 중이다.
어차피 써야 할 거라면 미칠 때까지 쓰자!
나는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로부터 듣는다.
유럽이 전쟁이라는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럽의 근대 이성이 의무에 대해 무지한 채 권리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글쓰기가 보상과 무관한 어떤 의무, 즉 신성함의 차원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자체는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보상이 없다고 중단할 수 없는 행위가 아니다. 듣는 사람이 적은 것이 말하기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원하는 출판사가 없다면 출판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후의 많은 책들은 규모가 작은 신생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현재까지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매가 가능한 책은 서너 권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8대학의 술라주 교수에게서 서신이 왔다. 내용의 일부를 내가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하나의 대변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옮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전후 유럽과의 헤게모니 쟁탈, 구 소련 연방, 중국과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또 다른 전쟁으로서 냉전 상황이라는 양쪽으로 펼쳐지는 전선에서 승리를 담보할 문화적 복안으로서, 즉 미국적 소비자본주의와 세계주의를 천명하는 소프트 파워의 수행적 기계가 필요했다.
이 부분을 살피지 않으면서 전후 세계미술의 흐름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다.
대전의 총성이 멈췄을 때 평화가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지만, 역사는 다시, 이번에는 잘 보이지 않고 선전과 조작이 난무하는 문화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대단히 미국적인 하나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팝 아트와 그 황제 앤디 워홀이 그것이다. 1] ROY LICHTENSTEIN_Girl with Hair Ribbon,1965.jpg
이 책은 이제는 지나간 역사에 편입된 앤디 워홀과 그의 팝 아트, 그 의미와 여파를 당대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인식이 아니라, 쉽게 변형되지 않는 위대한 철학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 시도다.
광범위한 미디어 조작의 시대가 감추고 싶어했던 것들,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그것의 정식화된 서사, 학습된 독해의 틀에서 벗어나기, 그때 비로소 신흥제국의 문화적 무기체계의 일환으로 편입된 예술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기에, 워홀과 뉴욕 팝아트의 서사를 긴밀하게 지지해온 우파 포퓰리즘, 미디어 선전술과 과장, 가스 라이팅, 집단학습의 정체에 다가서야 한다.
워홀과 그의 팝 아트의 미학적 빈곤을 열거하는 것은 ‘l’Ere d’Andy Warhol’을 구성하는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비판적 다시 읽기의 대상은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데이미언 허스트로, 소위 앤디 워홀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팝과 포스트 팝의 영웅들 전반으로 확장된다. 사회 전 분야의 잘못된 영역화로 극심한 분열증을 앓는 시대기에, 현대미술로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L’ ARCHE)를 창시한 장 바니에(Jean Vanier)의 담론을 소환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우리는 바니에로부터 오늘날 예술이 왜 그토록 상실과 절망의 늪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왜 하염없이 증오와 자책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상태에 머무는가에 대해, 현대미술 영역의 어떤 전문가보다 더 설득력있는 답을 들을 수 있다. 바니에는 현대인이, 우리 모두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사랑의 관계를 맺는 법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관계는 늑대의 관계뿐이다.
자크 엘륄(Jacques Ellul)을 읽어보라.
선동, 집단학습, 세뇌, 모두 늑대들의 소통방식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전략으로서 이미지 기술, 늑대의 미학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통제되거나 숨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꿈과 환상, 그리고 이론과 계획에 의한 성공과 환호가 가져다주는 요소들에 안주하려 드는 것도 통제술의 성과이다.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튼튼한 방어막’을 치고서, 과거나 미래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현대라는 질환의 대표적인 증세다.
그러니 결국 선택지는 없는 것과 같다.
팝 아트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환각제적 속성은 어디서 오는가?
고통의 문제를 다루기를 원치 않는 늑대들의 체계에서 온다.
첫째는 서구 미술의 늦깎이 수용에서 출발한 한국 이론가의 서구현대미술 읽기가 서구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 비서구 변방의 피상적이거나 편협한 독해로 간주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도 파리 쪽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서구 미술의 조류와 그에 관한 미술사 연구 장에 새로운 성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평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였다. 파리 8대학의 미학자 프랑수아 술라주(Francois Soulage) 교수는 나의 관점과 시각에 깊이 공감하는 취지의 긴 서문을 기꺼이 써주었다.
다음은 술라주 교수의 서문 가운데 발췌한 일부다.
한국의 심상용 (SIM Sang Yong) 교수의 본 저서가 ‘Local & Global’ 컬렉션에 출간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본 저서는 예술사에 대한 우리의 어떤 순진하고 잘못된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 예술의 역사는 역사의 경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접근 방식이 그것이다.
본 저서는 팝아트와 특히 앤디 워홀의 작품이 확립되고 발전하는데 있어서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그것이 본 저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본 저서는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 하이데거의 주장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 “우리 자신이 생각해야만 우리가 소위 생각이라고 말하는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다.(p. 8)
본 저서는 우리 목전에서 전개되는 스팩터클에 대한 우리의 수동성에서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예술 이미지의 소비의 방향이 아니라, 예술과 예술을 둘러싼 것에 명시적으로, 특히 암묵적으로 우리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말이다.
또한 본 저서는 "우리가 생각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예술 작품에 민감해지도록 한다.“(p.10)
l’Ere d’Andy Warhol’ 의 프랑스 출판이 지니는 둘째 의미는 조금 사적인 것이다. 자기 이름의 책을 출판하는 것도 자주 부빌없는 욕망의 일환이다. 어느덧 이 정도는 알 나이가 되었다. 다섯 권의 학위 논문에 열댓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면서다.
첫 번째 책이었던 『현대미술의 욕망과 상실』(현대미학사)이 25년 전인 1999년에 출판되었고, 이후 『그림 없는 미술관』(2000), 『천재는 죽었다』(2003), 『속도의 예술』(2008)이 각기 다른 제법 큰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모두 단명해, 어느 하나도 재판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시장 미술의 탄생』의 출판을 둘러싸고선 생각이 복잡해졌다. 상업적 성과야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다.
이 가난한 동네에서 글을 써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반응도 예컨대 미디어에 소개되거나 일정한 판매 부수가 꾸준히 지속되거나 등의 통상적인 잣대로 보면 대체로 신통치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전히 쓰고 있는 것인가?
이 시대에 대해, 이 시대의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을 무슨 명목으로 쓰는가? 왜 관심도 흥미도 없고, 돈을 지불할 생각도 없는 독자들에게 주머니를 열 것을 강요하는가?『시장 미술의 탄생』(2010)은 이 질문에 대해 적어도 나에게는 일정부분 답을 해준 사건이었다. 『시장 미술의 탄생』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술시장을 넘어 창작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집필이 시작된 원고였다. 21세기 예술의 급진적인 변화와 변형의 상황과 진단, 분석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자료 수집을 위해 프랑스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책이 출판되자 초기의 반응은 나름 뜨거웠다. 판매실적 상의 부진함을 넘어 서는데 보탬이 되는 종류의 반응은 물론 아니었다. 출간 초기에는 일간지를 포함한 적지 않은 매체들에서 기사화되고, 저자 인터뷰도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은 시점에 출판사의 절판 결정이 내려졌고,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팔리지 않는 책의 저자에게 항변은 주어지지 않는 권리겠지만, 내 셈으로는 너무 이른 절판이었다. 절판된 이후로도 한동안은 책의 구매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나 메일이 내게 왔다. 이 너무 이른 절판 사건은 내게 나의 모욕감, 자책감, 열등감 보다 더 절박한 문제로 나를 이끌었다.
팔리지 않는 책, 구매력과 동 떨어진 지식, 유행을 타지 않는 생각을 위해서는 단 한 평의 땅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 지식의 전체주의, 미래 세대 다양성의갈취(喝取)와 억압...
그 즈음 이후로도 나는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책을 출판했다. 심지어 대안적 성격의 계간잡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Contemporary Art Journal)’를 창간하기까지 했다. 2009년에 창간준비호를 낸 이 잡지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27호까지 내고 현재는 휴간-폐간에 가까운- 중이다.
어차피 써야 할 거라면 미칠 때까지 쓰자!
나는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로부터 듣는다.
유럽이 전쟁이라는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럽의 근대 이성이 의무에 대해 무지한 채 권리에만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글쓰기가 보상과 무관한 어떤 의무, 즉 신성함의 차원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자체는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보상이 없다고 중단할 수 없는 행위가 아니다. 듣는 사람이 적은 것이 말하기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원하는 출판사가 없다면 출판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후의 많은 책들은 규모가 작은 신생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현재까지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매가 가능한 책은 서너 권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8대학의 술라주 교수에게서 서신이 왔다. 내용의 일부를 내가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하나의 대변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옮긴다.
“이 책이 잘 알려져서 오늘날 예술에 대한 싸움과 성찰에 있어서 진일보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당신은 위대한 존경의 정신으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 행위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두 번째 책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책은 속편을 부르고 있고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l’Ere d’Andy Warhol’ 앤디 워홀의 시대
앤디 워홀의 시대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다.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전후 유럽과의 헤게모니 쟁탈, 구 소련 연방, 중국과의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또 다른 전쟁으로서 냉전 상황이라는 양쪽으로 펼쳐지는 전선에서 승리를 담보할 문화적 복안으로서, 즉 미국적 소비자본주의와 세계주의를 천명하는 소프트 파워의 수행적 기계가 필요했다.
이 부분을 살피지 않으면서 전후 세계미술의 흐름을 추적하기는 쉽지 않다.
대전의 총성이 멈췄을 때 평화가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지만, 역사는 다시, 이번에는 잘 보이지 않고 선전과 조작이 난무하는 문화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대단히 미국적인 하나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팝 아트와 그 황제 앤디 워홀이 그것이다. 1] ROY LICHTENSTEIN_Girl with Hair Ribbon,1965.jpg
이 책은 이제는 지나간 역사에 편입된 앤디 워홀과 그의 팝 아트, 그 의미와 여파를 당대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인식이 아니라, 쉽게 변형되지 않는 위대한 철학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 시도다.
광범위한 미디어 조작의 시대가 감추고 싶어했던 것들,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그것의 정식화된 서사, 학습된 독해의 틀에서 벗어나기, 그때 비로소 신흥제국의 문화적 무기체계의 일환으로 편입된 예술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기에, 워홀과 뉴욕 팝아트의 서사를 긴밀하게 지지해온 우파 포퓰리즘, 미디어 선전술과 과장, 가스 라이팅, 집단학습의 정체에 다가서야 한다.
워홀과 그의 팝 아트의 미학적 빈곤을 열거하는 것은 ‘l’Ere d’Andy Warhol’을 구성하는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비판적 다시 읽기의 대상은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데이미언 허스트로, 소위 앤디 워홀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팝과 포스트 팝의 영웅들 전반으로 확장된다. 사회 전 분야의 잘못된 영역화로 극심한 분열증을 앓는 시대기에, 현대미술로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L’ ARCHE)를 창시한 장 바니에(Jean Vanier)의 담론을 소환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우리는 바니에로부터 오늘날 예술이 왜 그토록 상실과 절망의 늪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왜 하염없이 증오와 자책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상태에 머무는가에 대해, 현대미술 영역의 어떤 전문가보다 더 설득력있는 답을 들을 수 있다. 바니에는 현대인이, 우리 모두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사랑의 관계를 맺는 법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관계는 늑대의 관계뿐이다.
자크 엘륄(Jacques Ellul)을 읽어보라.
선동, 집단학습, 세뇌, 모두 늑대들의 소통방식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전략으로서 이미지 기술, 늑대의 미학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통제되거나 숨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꿈과 환상, 그리고 이론과 계획에 의한 성공과 환호가 가져다주는 요소들에 안주하려 드는 것도 통제술의 성과이다.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튼튼한 방어막’을 치고서, 과거나 미래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현대라는 질환의 대표적인 증세다.
그러니 결국 선택지는 없는 것과 같다.
팝 아트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환각제적 속성은 어디서 오는가?
고통의 문제를 다루기를 원치 않는 늑대들의 체계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