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윤석열 정부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급락했다. 근로시간 개편안과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 원인이다. 정권의 사활이 걸린 총선이 딱 1년 남았다. 비상사태다. 하지만 여론을 얻자고 전 정부 같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두 정책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인 ‘자유민주주의’를 되돌아볼 것을 권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정체(政體)다. 자유주의는 국민의 권리를 공식적인 법률(또는 제도)로 안착하는 법의 지배(법치)가 특징이다. 민주주의는 여론과 선거를 이용하는 국민에 의한 지배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자유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정체이기도 하다. 물론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권리는 좁게 정해두고 법치를 강조하면 통치자만 특권을 누리는 권위주의 정부로 기운다. 반대로 권리는 넓게 정해놨는데 제도가 엉망이면 권리들이 충돌하는 가운데 힘이 곧 권리가 되는 무정부 상태가 도래한다. 여론에 대한 추종이 지나치면 우민 정치가 활개를 치고, 여론을 지나치게 무시하면 엘리트의 오만이 정부 실패를 야기한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는 권리, 제도, 여론, 엘리트가 적절히 균형을 잡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오랜 기간 이 균형을 잘 유지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윤 정부는 어떨까. 최근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적절한 균형을 찾았을까. 정부는 올초부터 연장근로 관리 단위는 늘리고, 총량은 줄이는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을 추진했다. 다른 선진국 사례를 봐도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주 69시간제’라는 프레임에 묶여 좌초하기 직전이다. 앞서 본 자유민주주의의 균형을 찾지 못한 탓이다. 정부는 주구장창 제도 측면의 유연화만 강조했다. 권리 측면, 즉 노동자 처지에서 본 임금(연장근로수당)과 시간(연차) 문제는 무시하거나 정책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다.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같은 전문가 집단의 논리에만 귀를 기울였지, 다양한 현장의 의견을 축적하고 분석하지 못했다. 그 흔한 여론조사도, 사회적 대화기구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았다. 제도와 전문가만 눈에 띄고 권리와 여론은 보이지 않으니, 정책은 ‘일방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일 외교도 비슷하다. 국제적 지지를 받기 어려운 대법원의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은 현실적으로 ‘제3자 변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북·중·러가 야기하는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한·일 관계 개선이 급박하다는 외교계의 공감대도 있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문 정부가 4년 가까이 방치한 문제를 일단락했다. 해결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또 불균형이다. 대통령은 대법원이 인정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를 제도로 안착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대외 정세의 엄중함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권리보다 법치에, 여론보다 엘리트에 무게를 싣는 윤 대통령의 행보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전 정부는 제도 없이 권리만 앞세우며 여론 선동으로 전문가 의견을 무시했다. 극단적 포퓰리즘이었다. 균형을 찾기 위해 막대를 반대로 구부릴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곧 정부 출범 1주년이다. 균형을 찾지 못하면 막대가 부러진다. ‘법치와 엘리트’라는 위로부터의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권리와 여론’이라는 아래로부터의 자유민주주의도 함께 강조해야 한다. 국운이 걸려 있는 정책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