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성의 원리’로 남녀평등 문제를 바라본다. 미디어상 정보의 홍수 문제를 ‘신호 대 잡음 비율’ 개념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한국외국어대 물리학 교수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제에 물리학 이론을 적용한다. 과학 법칙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고 가볍게 소개했다. (콘택트, 336쪽, 1만9000원)
‘이용자 0명.’어떤 서비스든 상품이든 출발선은 같다. 하지만 어떤 것은 세계적으로 20억 명의 사용자를 모으고, 어떤 것은 금방 망한다. 한때 2억 명을 끌어들인 6초 동영상 플랫폼 ‘바인’처럼 잘나가다 고꾸라지기도 한다. 돈이 다가 아니다. 구글은 2011년 소셜서비스인 ‘구글 플러스’를 선보이며 대대적인 론칭 행사를 했지만 전혀 돌풍을 일으키지 못했다. 대기업이 야심 차게 출시한 많은 서비스가 비슷한 길을 걸었다.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하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벤처캐피털 회사인 앤드리슨 호로위츠에서 심사역으로 일하는 앤드루 첸은 이를 ‘콜드 스타트 문제’라고 부른다. 추운 날 자동차 시동을 걸기 어려운 데서 말을 따왔다. 처음 출시된 모든 서비스와 상품이 마주하는 문제다.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차량 공유업체 우버에서 일하기도 한 그는 드롭박스, 슬랙, 줌, 링크트인, 에어비앤비, 틴더, 트위치, 인스타그램 등 유명 회사들의 사례를 연구해 <콜드 스타트>라는 책을 썼다. 이용자 0명이 어떻게 수천만 명, 수억 명으로 불어날 수 있는지 생생한 사례와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성공한 서비스의 이면엔 거의 항상 네트워크 효과가 있다. 쓰는 사람이 많으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용자가 임계점을 돌파하지 못하면 네트워크 효과는 오히려 역으로 작용한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 손님이 아무도 없으면 발걸음을 돌리고 싶은 것과 같다. ‘제품이 뛰어나면 자연스레 이용자가 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온라인 데이팅 앱 ‘틴더’는 2012년 출시됐다. 그전에도 매치닷컴, 이하모니, 오케이큐피드 같은 서비스가 있었다. 틴더는 좀 달랐다. 페이스북에 공통된 친구가 몇 명인지에 기반해 상대방의 신뢰도를 알려줬다. 마음에 들면 간단히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는 방법을 최초 도입했다.뛰어난 제품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틴더도 이용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돌파구는 ‘대학생들의 파티’에서 나왔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틴더 주최 파티가 열렸다. 입장객은 틴더 앱이 깔려 있음을 보여줘야 했다. 200~300명의 파티 참석자는 USC 안에서 가장 사교적이고 인맥이 넓은 집단이었다. 이렇게 대학마다 파티를 열자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이용자 임계점은 서비스마다 다르다. 개인에게는 자신과 상대방 두 명만 있어도 충분할 수 있다. 전화기가 그런 예다. 기업용 메신저인 ‘슬랙’도 그렇게 시작했다. 슬랙은 직장 동료끼리 쓰는 메신저다. 2명이든 3명이든 10명이든 상관없다. 같은 팀원들이 쓰기만 하면 된다. 슬랙을 공동 창업한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단지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우리 제품을 써보라고 설득했을 뿐입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수요 생성이나 현장 마케팅 등을 담당할 팀이 없었습니다.”슬랙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입소문이 나며 점점 퍼졌다. 대기업에서도 모든 직원이 슬랙을 쓸 필요가 없다. 팀 단위로 슬랙을 쓰면 됐다. 저자는 이를 ‘원자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최소 단위다. 원자 네트워크가 작을수록 확산하기 쉽다. 영상 통화 앱 ‘줌’이 이용자를 순식간에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틴더의 원자 네트워크는 대학교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임계점을 넘은 서비스는 ‘하키스틱 곡선’을 꿈꾼다. 기하급수적으로 이용자가 늘어나는 그래프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흥미가 떨어지면서 이용자가 이탈하기 시작하고, 콘텐츠 생산자나 인플루언서들이 경쟁 서비스로 옮기기도 한다. 차량공유나 음식배달 서비스 운전자가 자신들의 몫을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네트워크 상품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며 “결국 새로운 상품과 혁신만이 미래의 큰 성장 곡선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 끝없는 싸움에 참여한 모든 이가 읽어볼 만한 책이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오스카상(미국 아카데미상) 트로피는 금색이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없다. 1등과 ‘나머지’만 있을 뿐. 화려한 무대 뒤편에선 트로피를 거머쥐려는 영화계 인사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아카데미 시상식을 여는 이유는 우수한 영화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나 그렇다. <오스카 전쟁>의 저자 마이클 슐먼은 우수한 영화를 기리겠다는 허세를 앨프리드 히치콕의 ‘맥거핀’에 비유한다. 아카데미상에서 작품 수준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맥거핀은 영화에서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물이나 물건 등을 뜻한다.미국 주간지 ‘뉴요커’ 기자 슐먼이 정리한 영화산업의 후일담은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그는 품격이라거나 페어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카데미의 부끄러운 과거를 모았다. 슐먼은 영화각색가조합과 영화배우협회를 비롯한 단체들의 입김이 강해지는 과정에서 아카데미가 ‘단순히 트로피를 나눠주는 단체’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영화계 거물들이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굳히기 위해 아카데미를 통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심지어 오스카상이 대부분 잘못된 작품에 돌아갔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브로크백 마운틴’이 ‘크래쉬’에 작품상을 빼앗겼다”며 “2400여 년 전 에우리피데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가 아테네 연극제에서 3등으로 밀린 것만큼 충격적”이라고 혹평한다.가장 악랄한 사례는 오슨 웰스 감독의 1941년작 ‘시민 케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 ‘케인’이란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시민 케인’의 수상을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야유와 경멸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작품상을 받지 못하고 각본상 하나를 수상하는 데 그쳤다. 이 작품은 이후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이 재조명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슐먼은 ‘서사적으로 대담하고 시각적으로 실험적인’ 이 작품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책의 후반부는 비교적 최근 사건에 할애한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그가 배급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흥행을 위해 ‘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행보를 이어갔다.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작품상을 점령했다. 저자는 2015년 해시태그 운동 ‘#너무하얀오스카(#OscarSoWhite)’도 주목한다. 인종적 다양성을 무시해 온 관행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이후 후보작 선정 절차가 유의미하게 바뀌었다고 본다.<오스카 전쟁>은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경쾌한 문체가 돋보인다. 샘 와슨의 <더 빅 굿바이(The Big Goodbye)>와 더불어 최근 영화산업을 가장 자세하게 담은 책이다.이 글은 WSJ에 실린 마크 웨인가튼의 서평(2023년 3월 10일) <‘Oscar Wars’ Review: Hollywood’s Biggest Night>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사람들이 맑은 날씨를 찬양하는 일상적인 표현이다. 구름은 마치 완벽한 하늘을 망치는 것으로 여겨지거나, 울적한 기분을 탓할 핑곗거리로만 생각된다.영국의 과학 칼럼니스트 개빈 프레터피니는 책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를 통해 구름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운다. 그는 영국 레딩대 기상학과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왕립기상학회의 마이클 헌트상을 받은 기상학자다. 그는 구름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자연에서 구름만큼 다양하고 극적인 존재가 없다고 주장한다. 2005년 구름감상협회를 설립해 ‘푸른하늘주의’에 맞서 싸우며, 사람들을 아름다운 구름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저자는 구름의 분류부터 생성 원리, 개개 구름의 특징을 소개한다. 구름에 얽힌 신화와 예술, 감상법까지 담아 구름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 알린다. 구름감상협회 회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사진도 담았다. 저자는 “구름이야말로 대자연의 시이며 사람을 가리지 않고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최고의 평등주의자”라고 말한다.구름은 솜털 같이 뭉쳐 있는 적운, 험악한 번개와 폭우를 동반하는 적란운, 평평하고 넓게 펼쳐진 회색의 층운, 하늘에 층을 지어 떠 있어 롤빵을 닮은 고적운, 높은 상공을 잔물결처럼 수놓는 권적운 등으로 구분된다. 미확인비행물체(UFO)처럼 보이는 렌즈구름은 고적운의 한 종류다. 두루마리 모양의 모닝글로리,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비행운, 산꼭대기를 모자처럼 뒤덮는 모자구름 등 다양한 변종 구름도 소개한다.저자의 구름 사랑은 놀랍다. 구름무늬를 닮은 생선 비늘을 확인하러 어시장을 답사하고, 달리는 기차 위에서 구름의 변화를 추적한다. 활공기에 몸을 싣고 호주의 대형 구름 모닝글로리를 따라 비행한다.구름감상협회의 선언문은 구름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푹 빠지게 만들지 모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라. 그리고 구름 위에 머리를 두고 사는 듯, 공상을 즐기며 인생을 살라.’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