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기업을 상대로 주주총회 소집이나 회계장부 열람을 청구하는 등 경영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행동주의 열풍을 타고 소송까지 불사하며 제안을 반영시키려는 주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기업 매각을 두고 새 주인과 기존 주주 간 갈등이 증폭되며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툭하면 소송 거는 주주들

21일 금융감독원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국내 상장사(유가증권시장 코스닥)들이 휘말린 경영권 소송은 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0% 늘어났다. 제소당한 기업은 42개 사로 이 기간 90.9% 급증했다. 주주총회 소집 허가와 △회계장부·주주명부 열람 가처분 △의안 상정 가처분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검사인 선임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행동주의를 내건 자산운용사나 소액주주가 제기한 경우가 상당수다.

오는 28일 정기 주총을 앞둔 KT&G 사례가 대표적이다.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지난달 △인삼공사 분리 상장 △1조16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 △보통주 주당 1만원 현금 배당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 황우진 전 푸르덴셜생명 대표 사외이사 선임 등 11개 안건을 주총에서 다룰 것을 요구하는 의안 상정 가처분 소송을 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기한 주주 제안에 회사가 응하지 않자 소송에 나선 것이다. 이후 KT&G가 주주 제안 중 9개를 주총 안건에 포함하면서 FCP는 이 소송에선 자사주 취득 안건만 다루기로 했다.

KT&G와 비슷한 이유로 주주 제안을 주총 안건으로 채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주총을 여는 상장사 중 주주 제안을 안건으로 올린 기업은 42개사로 전년 동기 대비 61.5%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경영권 소송에 휘말리면 이 사실을 공시해야 하므로 기업은 평판 관리 등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인 교체 둘러싼 싸움도 치열

기업 매각을 두고 일부 주주가 반발해 벌어지는 경영권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SM엔터는 현 경영진이 카카오를 새 주인으로 맞이하려다가 창업자인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프로듀서와 격렬한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 전 총괄은 지난 3일 SM엔터가 카카오에 대해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소송에선 이겼지만, 아군으로 끌어온 하이브가 카카오와 손을 잡으면서 경영권 싸움에선 패배했다.

새 주인을 거부하는 소액주주들과 소송전을 벌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신약 개발업체 헬릭스미스는 지난해 말 신주 발행을 통해 카나리아바이오엠을 최대주주로 맞은 뒤 소액주주들과의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행동주의 바람 ‘한몫’

전문가들은 최근 주주행동주의를 바라보는 인식이 다소 바뀌면서 소송을 동반한 주주 관여활동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엔 행동주의가 최대주주 지배력이 약한 기업을 노려 공격한 뒤 시세차익만 챙기는 ‘약탈주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주주 환원에 인색한 기업 등에 효과적인 주가 부양 방법을 제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주주행동주의에 휘말린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키움증권이 SM엔터, KT&G, 오스템임플란트 등 최근 행동주의의 표적이 된 11개 기업의 주가 변화를 분석한 결과 주주가 행동주의 활동을 시작한 뒤 최고가에 이르기까지 평균 23.4%의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 권리 보호를 강화한 제도가 연이어 도입되고 있는 것도 주주행동주의에 힘을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보유 주식의 최대 3%로 제한한 ‘3% 룰’이 도입된 데 이어 2021년엔 지분 10% 이상을 보유해야 사모펀드(PEF)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규제도 폐지됐다. 지난해 말엔 상장사가 물적분할할 때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제도가 시행됐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