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전개 속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기설이 등장한 지 불과 36시간 만에 은행이 파산할 정도로 가히 빛의 속도로 예금 인출이 이뤄졌다. “실리콘밸리가 만든 체제에 실리콘밸리가 당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표현 그대로다.

SVB 파산이 급속도로 이뤄진 가장 큰 원인은 모바일뱅킹을 통한 예금 인출, ‘폰 뱅크런’이었다. 비행기 탑승객은 착륙 후 은행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항공기에서 공항까지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고 미친 듯이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고 화면을 밀면서 돈을 빼냈다. 이런 식으로 동시다발적인 예금 인출이 이뤄져 36시간 만에 420억달러(약 55조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는 공포를 전염시키는 매개 역할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무용 메신저 앱 ‘슬랙’이 불안심리를 증폭시킨 주범이었다. 위기설 초기만 해도 ‘과민 반응’이라고 여기던 사람들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메신저를 통해 곳곳에서 예금을 인출하라고 아우성을 치자 너도나도 뱅킹 앱을 열고 예금 인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노 랜딩(no landing)’ ‘고도 침체(Godot recession)’ 등 경기 침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미국인들의 불안심리에 불을 지른 꼴이 됐다. SVB가 실리콘밸리 최대 은행으로 성장하는 데는 40년이 필요했지만, 몰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일에 불과했다.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의 위기관리에 몇 가지 교훈을 던지고 있다. 금융산업 혁신의 원동력인 모바일이 상황에 따라선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를 조장하는 원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은행 지점만 단속하면 뱅크런 대응이 가능했지만, 이젠 메신저와 같은 ‘디지털 바이럴’이 촉발하는 폰 뱅크런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야 한다. 특히 기존 은행권에 비해 중·저신용자에게 공격적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있는 인터넷은행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노출도가 높은 저축은행의 리스크 관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젠 금융 리스크 관리도 디지털의 역습까지 염두에 둔 뉴노멀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