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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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A씨는 최근 개인연금 수령 시점을 연기하려다 고민에 빠졌다. 연금을 연기할 경우 월 수령액이 많아져 당초 생각한 연금소득세율(3.3~5.5%)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내야할 수 있어서다. A씨가 월 100만원을 초과하는 사적 연금을 받으면 세율은 16.5%로 높아진다.

연금소득자가 늘면서 이처럼 세금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가가 올라 고령층 평균 생활비가 증가하면서 연금 수령액을 높이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연금액 기준은 지난 2013년 이후 연 1200만원으로 고정돼 간접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소득세 기준 11년째 '고정'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등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고령자(55세 이상)는 지난해 745만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사적연금 저율과세 기준을 초과하는 연 12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은 126만명이다. 이 기준이 정해진 2013년 51만명에서 2.5배 증가했다.

저율과세 기준은 연금저축 등 사적연금에만 적용된다. 연 1200만원 이하는 연령에 따라 3.3~5.5%의 세율이 적용된다. ‘55세 이상 70세 미만’은 5.5%, ‘70세 이상 80세 미만’은 4.4%, ‘80세 이상’은 3.3% 등이다. 1200만원을 넘으면 16.5%로 분리과세하거나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해 6.6~49.5%의 높은 세율로 과세한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저율과세 없이 과표에 따라 소득세율을 적용해 산출된 세금을 낸다.

개인연금으로 매달 100만원씩 받는 사람은 5.5%의 세율로 66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1134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액이 월 110만원으로 늘어나면 연 1320만원으로 기준을 초과한다. 전체 금액이 16.5%의 세율로 과세돼 218만원을 낸 후 1102만원만 받아갈 수 있다.

이 기준은 2013년 정해졌다. 그 전까지는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합쳐 600만원 이하에 저율과세혜택을 줬다. 10여년 전 기준을 두배 가량 상향한 후 계속 고정돼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간 물가가 크게 오르며 고령 가구의 생활비도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의 평균 소비지출은 2013년 1153만원에서 2022년 1729만원으로 50.0% 증가했다. 이 기간 물가상승률은 약 18%인데, 고령 가구 지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이 증가했다. 1200만원 기준이 생길 때만해도 평균 소비지출액을 해당 금액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세금수입 규모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연금소득세수는 지난 2012년 57억5600만원에서 2021년 2812억1100만원으로 50배 가량 늘었다. 여기엔 연금소득자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소득세 개편 반영해야

1200만원 이하 기준은 소득세 최저세율이 적용되는 기준과 같았다. 해당 구간의 일반 소득세율은 6.6%다. 정부가 15년만에 소득세 과표구간을 조정해 올해부터 소득세 최저세율 구간이 1400만원 이하로 높아진만큼 연금소득세 저율과세 구간도 여기에 맞춰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00만원 이하 기준이 유지될 경우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의 대안으로 꼽는 사적연금을 통한 보완 방안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사적연금을 늘리기 위해 납입액을 늘렸다가 나중에 고율의 세금으로 모두 토해낼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근 정부가 연금저축 등을 확대하기 위해 세액공제한도를 900만원까지 높인 것도 저율과세 구간 조정 없이는 효과가 낮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