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용두사미 우려되는 은행 과점 깨기
‘평화은행 동남은행 동화은행’. 1980년대 설립돼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은행들이다. 은행 간 경쟁 촉진을 목표로 세워졌지만 자산과 규모가 작은 탓에 경쟁력이 떨어졌고 그 결과 부실이 늘어나 다른 은행에 합병됐다. 이들 은행의 이름이 최근 금융시장에서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가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챌린저 뱅크’(소규모 특화은행)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챌린저 뱅크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중소기업 대출, 환전, 송금 등 특화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을 말한다. 평화은행은 근로자, 동남은행은 지방 중소기업, 동화은행은 이북5도민을 집중 공략하기 위해 설립된 특화은행이었다.

가능한 모든 카드 꺼내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강하게 비판한 이후 금융당국이 본격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업권별 협회 및 금융권과 실무작업반을 구성해 두 차례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몇 차례 회의를 더 한 뒤 오는 6월 말까지 최종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회의에선 신규 은행 추가 인가,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업무 범위 확대 등이 집중 논의됐다. 신규 은행 추가 인가와 관련해선 특화은행 도입,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시중은행 추가 인가,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이 검토됐다. 은행과 비은행 간 경쟁 촉진을 위해선 카드사의 종합 지급 결제 허용, 증권사의 법인 대상 지급 결제 허용, 보험사의 지급 결제 겸영 허용, 비은행의 정책자금 대출 확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털사 등 53개 금융회사의 신용대출 금리와 한도 등을 한눈에 비교하고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5월에 선보이고, 올해 안에 온라인을 통해 주택담보대출도 갈아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정부가 모든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현실의 벽 넘기 쉽지 않아

하지만 벌써부터 이들 방안의 실현 가능성과 적절성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은행을 늘리는 방안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시중은행의 평균 자본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5조원의 자본이 필요한데 자금을 댈 기업이나 투자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화은행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미 시중은행이 대부분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정된 업무로는 경쟁력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은행 수만 늘어나면 과점 해소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경쟁만 과열돼 은행산업 전반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가 많다.

카드·증권·보험사에 지급 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에 지급준비금을 예치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받는 반면 비은행권은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아 건전성·유동성 관리와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은행권의 리스크가 은행 등 금융산업 전반의 시스템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다 보니 금융업계와 금융소비자 사이에선 은행 경쟁 촉진 논의가 결국엔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전망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