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에 살던 고양이들이 '단체 이사'에 들어간다.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위협한다는 지적에 마라도 길고양이 반출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름하여 '마라도 고양이 생명존중 이주 프로젝트'다.

1일 오전 서귀포시 대정읍 운진항에서 바지선을 타고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 도착한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와 동물보호단체는 길고양이 구조 작업을 벌였다. 구조에는 전국단체인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대표 황미숙)과 제주지역 단체인 '혼디도랑'(대표 김은숙) 등이 함께했다.
"마라도 고양이 이사가는 날" 뿔쇠오리 보존 위해 제주도로 반출
구조작업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더디게 진행됐다.

날씨가 좋을 때 2시간 정도면 수십 마리 고양이를 거뜬히 구조할 수 있지만, 비가 올 때는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이들 구조 단체는 우선 포획 틀을 일일이 점검하고 설치할 장소를 꼼꼼히 확인한 뒤 작업을 진행했다.

포획 틀 안에 냄새가 강한 사료나 간식 등을 놓고 기다리자 길고양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마라도 고양이 대부분이 중성화 후 재방사된 개체들이기 때문에 경계심이 강해서인지 포획 틀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렸다.

길고양이 한 마리는 한참을 서성이다 먹이를 먹기 위해 포획 틀 안으로 들어가 간신히 구조됐다.

마라도는 세계에 5천~6천마리 정도밖에 없고 국내에는 300~400쌍만 서식하는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서식지 중 하나다.

섬 주변 암벽 또는 암초에서 집단으로 번식하는 뿔쇠오리는 2월 하순부터 마라도에 날아들기 시작해 5월 상순까지 번식한다.

하지만 매년 마라도에서 고양이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뿔쇠오리 사체가 발견되면서 섬에서 뿔쇠오리가 멸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최근 한 연구(마라도의 뿔쇠오리 개체군 보전을 위한 고양이 서식현황, 행동권 및 생존능력분석)에서 마라도에 고양이가 80마리 이상이면 뿔쇠오리가 20년 안에 절멸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달 24일에도 마라도에서 고양이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뿔쇠오리 4마리의 사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동물보호단체, 학계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길고양이를 반출하기로 합의했다.

구조단체는 이날 마라도 내 60∼70마리 정도의 길고양이가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 가급적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개체들 40마리가량을 구조해 제주 본섬으로 반출할 예정이다.

나머지 일부 고양이는 마라도에서 키우기를 희망하는 주민들에게 입양시킬 방침이다.
"마라도 고양이 이사가는 날" 뿔쇠오리 보존 위해 제주도로 반출
구조에 참여한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 황미숙 대표는 "뿔쇠오리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비롯해 모든 생명은 다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며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우리 길고양이 보호단체가 함께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의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춘구 마라리장은 "우리가 필요해서 키웠던 고양이들이기 때문에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마라도에서 새들을 공격할 동물이 고양이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 끝까지 잘 보살피겠다고 하니 믿고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된 길고양이는 조만간 제주 본섬으로 이송돼 건강상태 확인 등 절차를 거쳐 제주시 조천읍 세계유산본부 인근에 별도 마련한 시설에서 보호받는다.

길고양이 이송과 검진, 보호 과정에는 제주대학교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윤영민 교수)와 '혼디도랑', '제주비건'(대표 김란영), ㈔제제프렌즈, ㈔제주동물권행동NOW, ㈔행복이네협회 등이 참여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기상이 좋다면 2일 바지선을 통해 길고양이를 반출할 예정이지만 당일 기상악화 등으로 인해 배가 뜨지 않는다면 작업을 그다음 날로 연기할 방침이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