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우크라서 쫓겨난 폴란드인의 대전환 "러시아라는 더 큰 적 맞서"
우크라 난민 200만명 수용…구원 잊고 두 팔 벌린 폴란드
폴란드가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와의 구원(舊怨)을 잊고 최근 난민 200만명을 받아들이며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최대 수용국이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초 폴란드는 민족 동질성이 강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 바뀐 '난민 환대' 기조를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가 지난 2015년 당시 다른 난민 유입에 대해 보인 정치적 소동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전 벨라루스와 망명 신청자 수용을 놓고 갈등하던 모습과 대조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전 발발 후 지금까지 980만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이중 다수는 우크라이나를 오가고 일부는 폴란드를 경유해 다른 나라로 갔다.

폴란드에 지금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은 200만명으로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는 독일이 100만명이다.

특히 폴란드 남서부 도시 브로츠와프의 사례를 신문은 거론했다.

현지 관리들은 폴란드어 사용 일색이던 이 도시에서 현재 4분의 1 넘는 주민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를 쓴다고 말했다.

전쟁 전 64만명이던 도시 인구는 이제 25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사람을 수용했다.

특히 이 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추방된 폴란드인들이 많이 와서 정착해 전형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과 폴란드 애국주의가 강한 곳이었다.

우크라 난민 200만명 수용…구원 잊고 두 팔 벌린 폴란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르비우 등은 본래 폴란드 영토였으나 80여년 전 우크라이나로 편입됐다.

그곳에서 많은 폴란드인이 학살을 당하거나 집에서 쫓겨났다.

이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어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 폴란드 난민 행렬이 우크라이나 난민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3월 하루 최대 1만2천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이 도시로 몰려왔다.

지금은 하루 20명 정도로 줄었다.

브로츠와프 시민들은 1997년 대홍수로 도시가 수해를 입었을 때처럼 누구라 할 것 없이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에 나섰다.

누가 조율하지도 않았는데 자원봉사자 4천명이 열차를 이용한 우크라이나 난민의 도착을 도왔다.

이런 환대 덕분에 이 도시에 우크라이나인 전용 식료품 가게는 6곳이 넘고 슈퍼도 2곳이 됐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영주권이 없지만, 일자리·교육·보건 서비스 접근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 후 한두 달이면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던 난민들도 폴란드에서 결혼도 하고 일자리도 얻으면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브로츠와프 한 학교의 폴란드어 교사인 이고르 체르빈스키는 폴란드 학생 250명에 우크라이나 학생 150명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부 동료들로부터 외국인이 많아졌다고 투덜대는 소리도 들었지만, 자신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이들 난민이 폴란드에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크라 난민 200만명 수용…구원 잊고 두 팔 벌린 폴란드
폴란드 사람들이 학살과 추방의 아픈 기억을 딛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두 팔로 안아준 데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폴란드에게도 큰 적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나라가 결딴나 지도에서 사라졌다가 2차 대전 연합국 승전과 함께 영토를 되찾았다.

70대의 전직 철도 노동자인 리샤르트 마르친코프스키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 숙모에게서 자신들을 쫓아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잔학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국경에 몰려왔을 때 음식 등을 챙겨서 마중하러 나갔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이런 환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 연설하면서 "하느님이 (폴란드를) 축복해주시길"하고 말할 정도였다.

바이든 대통령 외에 유럽연합(EU)도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폴란드를 말썽꾸러기 나라로 여기며 서로 관계가 불편했었다.

폴란드는 사법부 독립성 침해 논란과 성소수자(LGBT) 탄압으로 다른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난민을 이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인 데는 외양이나 관습에서 아프리카나 중동 출신 난민들에 비해 이질감이 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얼마나 오래 이런 환대 문화가 지속될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화 되고 있다고 반발하는 움직임도 일각에서 있으나 아직 주류는 아니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 21일 인터뷰에서 "일부 극우 정치인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소란을 피웠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