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가 향한 곳엔…전쟁의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1937년에는 중·일 전쟁,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식민지 대만에서도 징병했다. 20만 명이 넘는 대만 젊은이가 동남아시아 전선에 차출됐다. 수만 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현대의 대만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 됐다. 국공내전과 대륙인의 이주, 국민당 독재와 민주화 운동 등 대만 현대사가 워낙 다사다난했던 탓에 식민지 시절의 일은 너무 먼 옛날 일로 치부됐다.

최근 국내 출간된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는 포화 속에 사그라든 청춘을 떠올리며 아픔이 여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 대만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우밍이(52)가 쓴 이 책은 2018년 대만 소설 최초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올랐다. 부커상 홈페이지에 표기된 작가의 국적이 슬그머니 ‘대만’에서 ‘대만, 중국’으로 바뀌며 떠들썩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자전거에서 시작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도둑맞은 자전거에서 시작된다. ‘철마가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꿔놨어.’ 어머니는 툭하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소설은 대만에서 철마라고 불리는 자전거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전거는 주인공 ‘청’의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다. 1992년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 약 20년이 흐른 현재 작가이자 자전거 마니아인 청은 고물 수집가 ‘아부’를 통해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고, 자전거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뜻밖에도 자전거의 궤적은 말레이제도, 북미얀마의 밀림 등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청은 일본군과 함께 혹은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쟁의 생존자들, 현장을 목격한 사진작가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땐 사람들이 그렇게 등잔불 꺼지듯이 죽었어. 등잔불 꺼지듯이.”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꿈과 현실, 사실과 허구를 모호하게 서술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활용한다. 코끼리의 시점에서 전쟁의 슬픔을 서술하고, 물에 잠긴 건물의 지하에서 물고기로 변한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사라진 자전거’라는 하나의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증언을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교차해 흡인력 있는 전개를 완성한다.

작가는 이렇게 먼 옛날에 한 시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른 채 싸운 살상의 시대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