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동성결합도 이성 부부와 본질적으로 동일" 판단
"우리나라 얘기 아닌 줄" "사실혼 관계도 인정" 기대감
"차별없는 세상에 한발짝"…법원 판결에 동성커플 '환영'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 같습니다.

먼 이야기겠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동성 부부 결혼 합법화 논의도 이뤄지면 좋겠어요.

"
법원이 21일 동성결합 상대방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자 사실상 부부처럼 함께 사는 동성 커플들은 일제히 기쁨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동성 간 사실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동성결합이 이성 간 부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판단하면서 견고했던 차별의 벽을 조금은 허물었다는 것이다.

2015년 호주에서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리고 9년째 서울에서 동거 중인 A(46)씨는 "이전에 1심 판결을 보고 '역시 우리나라는 멀었다'는 생각에 실망했는데, 오늘은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깜짝 놀랐다"고 했다.

A씨 역시 몇 년 전 직장을 잃은 뒤 건강보험료를 지역가입자 자격으로 내야 해 부담이 컸다고 한다.

함께 퇴사한 동료는 남편의 피부양자로 자동 등록되는 것을 보면서 박탈감도 느꼈다.

그는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사는 데다 통장까지 공유하는 경제적 공동체인데도 단지 동성 간 만남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조차 피부양자 자격을 주지 않는 게 너무 억울했다"고 떠올렸다.

부산에서 10년 가까이 동성 연인과 함께 사는 남성 박모(42)씨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판결은 (평등 사회로 가는) 시작일 뿐"이라면서 "동성 연인도 의료법상 보호자로 인정해주는 등 꼭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송 원고인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 사례를 보면서 "나와 파트너 중 한 명이 직장을 잃거나 퇴사하면 겪을 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용기를 내 차별에 맞서 싸워준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파트너와 둘만의 언약을 맺고 2년째 부부로 사는 B(34)씨는 "법원이 동성 커플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여서 조금 아쉽다"면서도 "동성결합 당사자에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명시해 전향적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동성 부부가 가장 많이 토로하는 어려움이 장례 문제나 입원 시 보호자 관계다.

이번 판결로 거기까지 사회적 합의가 나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차별없는 세상에 한발짝"…법원 판결에 동성커플 '환영'
법의 보호를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했던 성 소수자들도 보다 평등한 사회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1년째 연인과 동거하는 김모(31)씨는 "애인과 삶의 동반자로 계속 함께하겠다는 확신이 있는데도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법으로 보장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두려운 마음이 컸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조금씩 권리를 찾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40대 여성과 5년째 만나고 있다는 정규리(35)씨는 이번 판결에서 제도적인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을 봤다며 "나아가 동성 커플이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관련 단체와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이 성소수자 차별 철폐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호림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사법부가 동성 커플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정부가 판결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동성 부부가 겪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20대 동성애자 아들을 둔 김진이(54)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승인은 사실혼 관계에서도 인정되는 만큼 가족으로 살고 있는 동성커플에게도 당연한 권리"라며 "이번 판결을 넘어 동성혼 법제화를 이루는 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성혼 법제화 등의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는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처럼) 결혼 제도의 실용적인 부분은 모두 인정해주면서 결혼 자체만을 못하게 하는 법제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별없는 세상에 한발짝"…법원 판결에 동성커플 '환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