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독일 경유 승용차 제조사 4곳이 배출가스 저감기술(SCR)을 개발하면서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기로 담합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과징금 총 423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연구개발(R&D) 담합’을 제재한 첫 사례다. 해외에서 이뤄진 외국 업체 간 담합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제재한 사례이기도 하다.

회사별 과징금은 벤츠 207억4300만원, BMW 156억5600만원, 아우디 59억7300만원이다. 폭스바겐은 담합 관련 차량을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아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 유럽연합(EU)과 한국 등에서 질소산화물(NOx) 배출 규제가 강화되자 SCR 시스템을 도입하되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SCR 시스템은 배출가스에 요소수를 공급해 질소산화물을 물과 질소로 정화하는 장치다. 요소수 분사량이 많을수록 질소산화물 저감 효과가 크다.

하지만 많은 양의 요소수를 분사하려면 요소수 탱크가 커야 하고 요소수 보충 주기도 짧아진다. 이 때문에 이들 4개사는 한 번 요소수를 투입해 주행할 수 있는 거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요소수 분사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는 “4개사의 행위는 더 뛰어난 질소산화물 저감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유 승용차 개발·출시를 막은 경쟁 제한적 합의이자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 이들 회사가 합의한 SCR 소프트웨어 기본 기능은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 3개사가 연루된 2015년 ‘디젤 게이트(경유 승용차 배출가스 불법 조작 사건)’의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담합으로 만들어진 기본 기능이 한층 악의적으로 변형돼 디젤게이트에 쓰였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수입 승용차 시장에서 벤츠(28.0%), BMW(25.4%), 아우디(9.3%), 폭스바겐(6.4%) 등 4개사의 점유율은 69%에 달한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