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여파로 값싼 멸균우유 수입이 크게 늘었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장바구니에 선뜻 담지 않고 있다. 이 우유는 폴란드, 호주 등의 대규모 목장에서 나온 원유를 고온 처리한 것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일반 우유의 반값이다. 하지만 특유의 밍밍한 맛 때문에 일반 우유를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밀크플레이션'에 3만t 수입…그 많은 멸균우유는 어디로?
2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에서 수입 멸균우유 판매 비중은 극히 저조한 수준에 머문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매장 우유 전체 매출 중 수입 멸균우유 비중은 0.1%도 되지 않는다. 온라인몰에서도 수입 멸균우유 매출은 통계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이 마트의 설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료값 상승 등으로 원유 생산가가 뛰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멸균우유 수입량은 3만3000t에 달했다. 전년보다 42%나 늘어난 양이다.

수입 멸균우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살균우유보다 높은 온도에서 원유를 가열해 모든 미생물을 제거한 뒤 포장한다. 유통기한이 길고 상온 보관이 가능하며 가격도 싸다. 대표적 수입 멸균우유인 폴란드 ‘믈레코비타’는 1L에 1500원 정도다. 같은 용량의 국내산 일반 우유는 대개 2500원이 넘는다.

수입 규모가 늘었지만, 소비자들이 쉽사리 장바구니에 수입 멸균우유를 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맛’이다. 우유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살균 우유와 처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멸균우유를 ‘싱겁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커피업계에서도 수입 멸균우유 사용을 머뭇거리는 분위기다.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일반우유를 사용하기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수입 멸균우유를 쓰자니, 위험 요인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다.

업계에서는 수입 멸균우유의 주요 수요처로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를 지목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입 멸균우유는 동네 소규모 카페 등에서 대량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 업장은 재고 관리가 어렵고 가맹본사의 지원도 없기 때문에 가격이 싼 수입 멸균우유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한계가 명확한 만큼 수입 멸균우유가 당장 국내 우유 시장을 급격히 잠식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멸균우유 수입량이 급증하는 데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2026년부터 미국, 유럽 등에서 우유가 무관세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수입 멸균우유가 지금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판매되면 국산 우유가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