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뚝 떨어진 물가(PPI)에도 연착륙 희망 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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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플레이션 둔화했지만
12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5% 하락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전월(0.2% 상승)뿐 아니라 0.1% 하락을 점쳤던 월가 예상보다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4월 이후 최대 하락률이었습니다. 1년 전에 비해선 6.2% 올랐습니다. 역시 11월(7.3%)과 월가 예상(6.8%)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작년 3월 11.7% 고점에 비하면 5.5%포인트나 내려간 것이죠.
씨티는 PPI 발표 이후 2월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기준금리 인상 예상치를 기존 0.50%포인트에서 0.25%포인트로 수정했습니다. 하이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루빌라 파루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이지만, 생산자물가는 고점에서 떨어졌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그는 "물가가 여전히 미 중앙은행(Fed)의 목표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어서 금리는 더 제약적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② 성장 지표는 줄줄이 엉망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는 이유는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 탓입니다. 이는 오늘 데이터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Fed의 긴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12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1% 줄어든 6771억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11월 수치가 기존 0.6% 감소에서 1.0% 감소로 낮춰졌는데, 그보다 감소 폭이 더 커졌습니다. 두 달 연속 감소세입니다. 월가 예상은 -1.0%였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6.0% 증가했습니다.
12월 산업생산도 소매판매와 쌍둥이 같았습니다. 전월보다 0.7%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1월 수치가 0.2% 감소한 데서 0.6% 감소로 하향 수정됐고, 12월은 그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월가 예상은 0.1% 감소였습니다. 전년 동월대비로는 1.6% 증가했습니다. 산업에서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제조업 생산이 전월보다 1.3% 감소하며 수치 하락을 주도했습니다. 광업 생산도 전달보다 0.9% 줄었습니다.
이런 '디플레이션+성장 둔화' 상황은 오후에 발표된 Fed의 경기평가 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도 드러났습니다. Fed는 이전과 비교해 전반적인 경제활동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지역 연은들은 대체로 앞으로 몇 달간 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나마 부동산 시장은 바닥을 다지고 있습니다.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의 1월 주택시장 심리지수는 35로 전월보다 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여전히 50을 밑돌아 부정적 상태를 나타내긴 했지만, 12개월 만에 처음 상승한 것입니다. 모기지은행협회(MBA)가 집계한 주간 모기지 신청 건수도 직전 주보다 28% 급증했습니다. 작년 10월 7% 중반까지 치솟았던 모기지 금리가 6.3% 수준까지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③ 그런데 금리 계속 인상?
사실 성장 둔화는 Fed를 비롯해 모두가 기다리던 것입니다. 그래야 물가가 떨어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Fed가 만족한다면 '굿 뉴스'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발언에 나선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시장을 만족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올해 FOMC 투표권자는 아니지만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래서 ‘배드 뉴스’가 된 것이지요. 오후에 발언대에 선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의 말도 비슷했습니다.
사실 최근 연착륙에 대한 기대는 커졌습니다. 경기 침체 없이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해온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오늘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겨울철 유럽의 에너지 대란, 코로나 변종, 배럴당 150달러를 넘는 유가 등 일어났을 법한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전부 비껴가고 있다”라며 “세계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이젠 조금 더 그럴듯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조심스럽던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도 "경제가 2023년 하반기에는 의미 있게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다보스포럼의 많은 이들이 연착륙을 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불러드 총재도 "작년 하반기에 고용과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점은 놀라웠다"라며 연착륙 가능성은 크게 개선됐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Fed가 이렇게 계속 긴축의 칼날을 세운다면 경기 침체는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경기 둔화의 신호는 금세 경기 침체로 바뀔 수 있죠. 기준금리를 4.25%포인트 높인 효과는 시차를 두고 더 크게 나타날 것이고요.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오전 9시 30분 0.1~0.5% 상승세로 출발했습니다. 장 초반 소프트랜딩 기대가 커지면서 잠깐 나스닥이 1%를 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러드와 메스터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전해진 뒤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장 막판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다우는 1.81%, S&P500 지수는 1.56% 떨어졌고 나스닥은 1.24%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경제 지표가 발표된 뒤 국채 금리는 폭락했습니다. 인플레이션 둔화+경기 침체 우려가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오후 3시 37분 10년물 금리는 16.7bp나 급락한 3.382%, 2년물은 11.8bp 떨어진 4.093%에 거래됐습니다. 10년물은 지난해 9월 중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경신했고, 2년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S&P500 지수는 오늘까지 3거래일 연속으로 장중 한때 4000선을 넘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늘 종가인 3928.86은 장기 추세선인 200일 이동평균선(3975)의 아래에 머물고 있습니다. S&P500 지수는 작년 4월 이후 20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이틀 이상 머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선 오늘 주가의 하락을 기술적 저항, 그리고 비싸진 밸류에이션에 따른 기관들의 차익 시현 등으로 해석합니다.
④ 실적도 실망
기업들이 발표한 실적도 실망스러웠습니다. PNC은행과 JB헌트, 찰스 슈왑 등이 줄줄이 월가 예상보다 낮은 실적 혹은 가이던스를 내놓았습니다.
트럭운송회사인 JB헌트의 경우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3% 감소했습니다. 비용 증가로 인한 마진 압박이 큰 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매출액은 36억 5000만 달러, 주당순이익(EPS) 1.92달러로 각각 월가 예상인 38억 4000만 달러, 2.46달러를 밑돌았습니다. JB헌트의 셸리 심슨 CEO는 "4분기는 계절적으로 수요가 약하다. 고객들은 증가한 재고를 다루느라 힘들어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는 "고객들로부터 2분기에는 보다 (재고가) 정상화되거나 정상적 환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좋은 신호를 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오늘 주가는 4.95%나 올랐습니다.
⑤ 내일 부채한도 도달
투자자를 불안하게 요인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바로 내일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경고한,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가 상한선(31조 4000억 달러)에 도달하는 날입니다. 재무부는 예산을 최대한 아끼는 특별조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아낄 수 있는 돈은 약 400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옐런은 지난주 의회의 증액 조치가 없다면 미국은 빠르면 6월에 채무 불이행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월가는 정부 예산이 다 소진되는 'X date'를 8월 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8월까지 미 의회가 부채한도를 증액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언스트앤드영의 그레고리 다코 이코노미스트는 "미 의회에서 부채한도 상한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스스로 경기 침체를 자초할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채한도 증액 실패에 따른 미 연방정부 부도 사태로 인해 경기 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부도가 나면 수많은 사회보장 혜택자와 공무원 등은 수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경기는 무너지고 금융시장은 폭락하겠지요. JP모건 자산운용의 데이비드 켈리 글로벌 전략가는 "부채한도를 올리지 못하면 '완전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 국채는 세계 금융 시스템의 기반이기 때문에 디폴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장 막판에는 이란이 핵무장 준비가 거의 다 되었고, 이스라엘이 조만간 이에 대응할 것이라는 소문이 월가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험자산' 주식은 하락하고 '안전자산' 채권 가격은 추가 상승(금리 하락)할 수 있습니다. 윤제성 CIO는 "모멘텀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이 이런 움직임에 베팅하는 곳이 증가하고 있다. 10년물 금리는 이런 베팅으로 인해 추가 하락할 수 있겠지만, 3.25% 수준에서는 반등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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