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미국에서 신차 가격을 최대 20% 인하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테슬라는 기존 소비자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고가 전략’을 수정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낮은 수익률로 가격 인하 여력이 크지 않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엔 비상이 걸렸다. 완성차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하 경쟁에 뛰어드는 ‘전기차 치킨 게임’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완성차업체 주가 일제히 급락

16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 12월부터 중국 한국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지난 12일 한 번에 최대 20%(약 1600만원)를 내린 미국 시장이다. 가격 인하의 첫 번째 이유는 수요 감소에 따른 판매 부진이다. 테슬라의 미국 점유율은 2020년 79%에서 지난해 65%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면서 ‘위기설’이 확산했다.

투자자들은 그러나 ‘폭탄 세일’ 이후 테슬라 판매량이 다른 완성차업체의 전기차 판매량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재고는 지난해 말 180만 대로 2021년 5월 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테슬라 재고는 할인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게 현지 리서치업체들의 추산이다. 중국에서도 “테슬라 주문량이 가격 인하 이후 일부 도시에서 전년 대비 500% 증가했다”는 보도(제일재경일보)가 나왔다.

테슬라가 가격을 내린 다음 날인 13일 글로벌 완성차업체 주가가 일제히 급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테슬라의 가장 큰 경쟁자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주가는 전일 대비 각각 4.75%, 5.29% 하락했다. 스텔란티스(-3.66%)와 폭스바겐(-3.49%) 등도 맥을 못 췄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지난해 기준)로 추산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전기차 판매 둔화 우려로 각각 1.48%, 1.07% 내렸다.

반면 테슬라 주가는 가격 인하에 따른 이익 감소 우려에도 0.94%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고마진 포기하고 판매량 확대

테슬라가 과감하게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것은 17.2%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지난해 3분기 기준) 덕분이다. 영업이익률이 5~10% 수준인 기존 완성차업체는 쉽게 취하기 힘든 전략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부품 공급난 해소로 생산이 정상화하며 신차 판매 경쟁이 격화하는 터라 글로벌 완성차업계로선 두고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수의 진’을 친 테슬라를 따라 전통 완성차업체들도 가격 경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치면 추격이 쉽지 않은 만큼 마진을 포기하고 치킨 게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통 완성차업체와 테슬라의 또 다른 점은 구독 서비스다. 테슬라는 판매량이 늘수록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에 따른 수익이 커진다. 또 운행 대수가 많아질수록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기하급수로 쌓이는 점도 긍정적이다.

고무줄 가격 정책 ‘갑론을박’

테슬라의 ‘고무줄 가격 정책’을 놓고서도 논란이 뜨겁다. 기존 완성차업계는 고가 내구재인 자동차 가격을 단기간에 올리거나 내리지 않았다. 차값이 쉽게 오르내리면 브랜드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이미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의 원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테슬라 가격 인하 이후 기존 소비자의 불만이 폭발하며 업계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번 세일이 테슬라에 장기적으로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브랜드 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기존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애플처럼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고가 판매 정책을 고집하는 걸 환영하기도 했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