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TPO 안 맞는 공직자의 눈물
1972년 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 기화가 돼 도중하차했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 캠페인 때였다. 한 지역 신문이 자기 부인을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여인’이라고 보도한 데 화가 치밀어 그 신문사 앞에서 트럭 위에 올라 열정적으로 아내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다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눈물이 아니라 눈송이가 뺨에서 녹은 물”이라는 거짓 해명까지 더해져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역 신문은 “남편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결정타를 먹였다. 이후 미국에선 ‘나약하고 감정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머스키의 눈물(Muskie’s Tears)’이라는 관용어구까지 생겼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모두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청문회 도중 앞서간 아들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쏟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돼 고별 연설을 할 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닉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인의 눈물은 머스키처럼 부적절한 경우가 더 많다. 김영삼 정부 시절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과 언쟁 도중 울음을 터뜨리더니 국회 상임위 회의장에서 의원의 지적을 받고 또 눈물을 글썽인 ‘울보 장관’ 황산성 전 환경처 장관, ‘석면 탤크’ 파동 때 국회의원들이 질타하자 “저도 괴롭다. 나무라지만 말고 좀 도와달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군 윤여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눈물은 누가 봐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지 않는 눈물이다.

얼마 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시무식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더 어이없는 것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김 처장이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를 소개하며 그 시에 곡을 붙인 찬송가까지 부르다가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사기관의 수장이 시무식에서부터 눈물을 보인 것은 물론이요, 참석자들에게 종교적 부담을 안긴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공수(空手)처’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이 기관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