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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작년보다 1조원 넘게 늘어났다.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린 기업도 2배 이상 증가했다. 코스피지수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하락폭을 기록하는 등 증시가 부진하자 기업들이 주가 방어에 나선 것이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자사주 취득 계획을 신고한 기업들의 매입 규모는 5조2461억원이다. 작년 자사주 취득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규모(4조565억원)보다 30% 가량 늘었다. 증가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올 하반기 취득 계획을 신고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내년 초까지 자사주 매입을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주식소각결정 공시 건수는 63건이다. 작년(31건)의 2배를 넘었다.

14년 만에 최악의 약세장에 직면한 기업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주주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코스피지수는 24.89% 떨어져 2008년(-40.73%) 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실적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기보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선택한 영향도 있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배당은 한 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소각을 주주친화정책으로 내세우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소각 정책을 펼친 모든 기업이 주가 부양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실적이 부실한 기업의 주가는 추세적 상승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올 2분기와 3분기 모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코스닥 상장사 MDS테크는 19일과 26일에 각각 자사주 소각과 무상증자를 공시했다. 주가가 반짝 상승하기도 했지만 결국 19일 종가(7560원)보다 낮은 7440원에 올해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주주 친화 전략을 펼치는 기업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가가 꾸준히 오를 가능성이 높아서다. 올해만 세 번 자사주를 소각한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주가는 자사주 소각을 처음 공시한 날보다 모두 올랐다. 준수한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두 번 자사주를 소각한 KB금융 주가는 배당락일 전일(27일) 기준 6개월 간 5% 넘게 올랐다. KRX 은행지수가 같은 기간 0.8% 떨어진 것과 반대다.

조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소각 정책을 펼치는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실적 지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