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마켓PRO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프리미엄 투자 콘텐츠를 보다 편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종목 집중탐구

BDI 급락 속에 운영 선대 규모 줄여 대응
내년 환경 규제 등 따른 벌크선 공급 제한 전망
호황 때 번 돈으로 LNG운반선 신사업 진출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해상운임지수가 곤두박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운사들은 3분기까지도 호실적을 이어갔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말미암은 의외의 호황기가 끝난다는 ‘피크 아웃(정점)’ 우려에 가장 먼저 휩싸인 업종 중 하나인데, 상당수 업종이 불황에 빠진 지금까지도 호황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물론 해운업종이라고 불황을 피해갈 수는 없죠. 해운 대장주인 HMM을 기준으로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는 지난 8월의 약 6조3000억원을 정점으로 하향세가 이어져, 이달 8일 기준으로는 2조8074억원까지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지난 8일 기준 벌크선사인 팬오션의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7571억원으로, 정점이었던 지난달 10월16일의 7782억원 대비 하향폭이 2.72%에 불과합니다. 이 종목도 3분기 실적이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달 6일까지는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 하향이 이어지다가, 3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전망이 바뀌자 주가도 반응했습니다. 5950원인 지난 9일 종가는 해상운임지표 하락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올해 5월24일의 고점(8090원)과 비교하면 26.45% 낮지만, 지난달 3일의 저점(4180원)과 비교하면 42.34% 오른 수준입니다.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자료=에프앤가이드 데이터가이드

선대 운영 능력으로 불황에도 호실적

주가와 증권가의 내년 실적 전망이 함께 반등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계기가 된 3분기 실적을 살펴보시죠.

팬오션의 지난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3% 증가한 1조8365억원, 영업이익은 17.3% 늘어난 2244억원입니다. 실적 발표 직전인 지난달 10일에 집계된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 1901억원과 비교해 발표된 실적이 18% 웃돈 ‘어닝 서프라이즈’였습니다.

특히 팬오션과 같은 벌크선사의 수익성 지표인 발틱건화물운임지수(BDI)의 3분기 평균이 1년 전 대비 55.7% 급락한 해상 운송 시황 불황기에 내놓은 호실적이었기에 증권가의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발틱건화물운임지수(BDI)가 하락했으니, (팬오션은) 적절한 시황 예측을 통해 이익 극대화에 성공했다”며 “선제적으로 화물을 확보하고, 이후 선박을 확보하는 전략을 통해 운임 하락 구간에서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팬오션은 불황에 대비해 선대 규모를 줄여 비용을 통제했습니다. 3분기말 기준 운용 선대 규모는 233척으로 직전분기의 278척 대비 45척을 줄였죠. 시황 부진을 예상하고 높은 가격에 용선(배를 빌리는 것)한 선박을 반납한 겁니다.

이 같이 선대 운용의 실력을 보여준 게 내년 실적 전망치 상향의 근거가 됐습니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3분기 실적을 통해 운임 변동성이 높은 구간에 대한 팬오션의 대응 능력이 증명됐다”며 “이 회사는 이미 4분기 및 전통적인 비수기인 1분기 구간을 활용한 저가 용선 및 중고선 투자를 고려하고 있어, 내년까지 선대 전략을 통한 실적 개선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환경 규제로 내년 벌크선 공급 부족 가능성도 제기돼

물론 팬오션이 지난 3분기에 한 번 보여준 뛰어난 선대 운영 실력을 근거로 내년 호실적을 기대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심지어 내년에는 경기 침체가 본격화될 예정인데 말이죠. 해운업은 경기민감업종 중에서도 특히 민감도가 높은 업종으로 꼽힙니다. 호황기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마찬가지로 불황기에는 장기간 적자를 이어가기도 하거든요. HMM이 코로나19 확산사태 전까지 10여년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2021년 호황으로 누적 적자를 한 방에 만회한 것처럼요.

우선 환경규제가 선복(화물을 실을 선박 내 공간) 공급을 줄여줄 전망입니다. 환경 규제도 선복 공급을 줄이는 요인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에너지효율지수(EEXI) 등급제도에 따라 2016년 이전에 인도된 선박이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더군요.

김영호 연구원은 “전체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선복의 72%에 해당하는 약 7억DWT와 1834만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가 2016년 이전에 인도된 선박”이라며 “상당히 많은 선박이 EEXI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기준 미달로 인한 감속 등 저감 조치가 시행될 경우 추가적인 공급 완화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벌크선 업계의 경우 공급 부족(숏티지)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컨테이너선에 비해 벌크선은 호황기에 선박을 새로 지어 달라는 발주도 적었습니다. 컨테이너선 운임 급등세가 더 가팔랐기 때문이죠. 현재 조선소가 주문을 받아 짓고 있는 컨테이너선 발주잔고는 전체 컨테이너선 선복량의 28.9%에 달하지만, 벌크선 발주 잔고는 6674만DWT(재화중량톤수)로, 전체 벌크선 선복량의 6.9%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신사업으로 키우는 LNG운반선 주목받지만…

팬오션은 호황기에 벌어들인 현금으로 벌크선을 새로 주문하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사업에 나섰습니다. 내년 1월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11척의 LNG운반선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증권가가 해운사들 중에서 팬오션에 특히 우호적인 이유도 LNG 신사업입니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삼성중공업]
정연승 연구원은 “국내 운송사업자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운임 급등에 따라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해 자본 규모도 급증했지만, 확대된 자본 규모 대비 이익 모멘텀이 약화되면서 자기자본수익률(ROE)이 하락하기 시작했다”며 “중장기 ROE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 없이는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어렵다”고 분석합니다.

다만 장기적으로도 LNG운반선 투자가 성공적일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증권가에서는 LNG운반선 한 척을 운영하면 연간 1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남길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가장 규모가 큰 LNG운반선인 17만4000㎥급을 기준으로 신조 선박 가격이 2000억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20년을 굴려야 본전을 뽑는다는 이야기죠.

문제는 LNG도 화석연료라는 점입니다. 에너지원으로서 LNG조차도 미래가 장담하지 못하는 배경은 조선·해운업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선박 연료 문제에서입니다. 한때 LNG 추진선이 차세대 선박으로 각광받기도 했지만, 중장기적으로 LNG운반선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라는 점에서 IMO의 규제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조선·해운업계에서는 최근 수소나 암모니아를 추진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