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 우려로 밀 가격이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협정의 연장에 합의한 여파다. 장기적으로는 아르헨티나 등 일부 지역에서 작황이 나빠 밀 공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내년 3월물) 가격은 부셸당 818.25센트를 기록했다. 전거래일 대비 0.46% 하락했다. 16일 이후 4거래일 연속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이달 초만 해도 900센트를 웃돌았던 밀 가격이 800센트 초반대에 자리잡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였던 지난 3월 초 1425.20센트까지 치솟았던 가격과 비교하면 43% 낮다.

가격 하향세를 이끈 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협정 연장이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17일 기존 곡물 협정을 기존 조건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120일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7월 22일 양국은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곡물 협정을 맺었다.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허용하되 서방은 러시아의 곡물, 비료 수출을 막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후 지난 8월 1일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재개됐다.
11월 22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부셸당 밀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11월 22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부셸당 밀 가격 추이. 자료=블룸버그
이 협정은 지난 18일 만료를 앞두고 극적으로 연장됐다. 합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1년 연장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 측의 요구대로 120일 연장안이 적용됐다. 러시아는 그간 국제사회에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다시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지만 이번 협정 연장으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공급 불안정에 대한 시장 우려가 줄었다. 러시아가 주장했던 암모니아 수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 여부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투자정보매체인 벤징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농업 수출액은 270억달러 수준이다.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공급량의 9%를 차지하는 밀 수출 규모 5위 국가다. 세계 해바라기유 공급량의 46%가 우크라이나에서 나오기도 했다.

협정 연장으로 인해 흑해를 통해 공급되는 러시아산 밀 가격도 떨어졌다. 농업컨설팅 업체인 IKAR에 따르면 단백질 함량 12.5% 기준 러시아산 밀의 흑해 항구 공급가는 지난 18일 톤당 314달러로 전주 대비 3.5달러 하락했다. 러시아산 곡물 수출량은 지난주 103만톤으로 전주와 비교해 변동이 없었다.

중국의 코로나19 유행 심화도 밀 가격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인 하이타워는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 건수가 늘어나는 게 식품과 에너지 소비에 수요 약세를 불러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 16일 이후 나흘 연속으로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2만명을 넘겼다.

장기적으로는 밀 공급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제곡물이사회(IGC)는 2022~2023연도 수확시기 세계 밀 생산량 전망치를 기존 전망보다 100만톤 낮은 7억9100만톤으로 하향 조정했다. 주요 밀 생산국인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건조했던 날씨가 밀 작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전망 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르헨티나 경제부에 따르면 2022~2023연도 아르헨티나의 밀 수확량은 전년 동기 대비 39.4%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