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사진=삼성전자 제공
2021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한국을 찾는 글로벌 재계 거물들과 연이어 만난다. 'JY(이재용) 네트워크'로 반도체 업황 부진, 글로벌 경기침체 등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연말·연시에는 해외 각지를 직접 찾아 회장 승진 후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번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피터 베닝크 ASML의 CEO를 비롯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 글로벌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과 릴레이 회동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장비 사업 계약이나 신규 시장 진출 등에서 이른바 'JY 네트워크'를 발휘해 성과를 내왔다. 이번 회동에서도 JY 네트워크를 통해 그룹의 미래 먹거리 확보에 힘을 실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이 회장은 먼저 지난 15일 나델라 CEO와 만남을 가졌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미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MS 본사를 방문해 나델라 CEO와 만나 반도체,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삼성-TSMC 격돌…"ASML은 든든한 조력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12일간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12일간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16일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베닝크 CEO와 회동할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사업을 포함한 전방위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닝크 CEO는 이날 경기 화성에서 열리는 ASML의 '뉴 캠퍼스' 기공식 참석차 방한했다. 오는 2025년까지 총 2400억원을 투입해 화성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ASML은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 시장에 독점 공급해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불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이 주요 고객사다.

이 회장은 2020년 10월과 올해 6월 네덜란드에 있는 ASML 본사를 직접 방문해 베닝크 CEO에게 EUV 장비의 원활한 공급을 요청했다. 초고가임에도 공급이 달리는 EUV 장비의 확보 여부에 반도체 초미세 공정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

삼성전자는 대만 TSMC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만큼 ASML과의 강력한 파트너십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업계는 이번 회동으로 ASML과 삼성전자의 협업 관계가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오는 17일에는 빈 살만 왕세자와도 회동할 것으로 추측된다. 총사업비 670조원 규모에 달하는 사우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 사업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17일은 이 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의혹 공판이 열리는 날로 법원 출석이 예정돼 있지만, 법원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거물급 글로벌 인사들과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

첫 해외 출장지로 베트남 유력…미국 출장도 관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사진=뉴스1
연말·연초에는 해외 출장 스케줄도 빼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첫 해외 출장지는 베트남이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베트남 하노이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고 있다. 지상 16층·지하 3층, 연면적 8만㎡에 달하는 동남아 최대 규모로 2억2000만 달러(당시 환율 약 2600억원)를 투입했다.

새로운 R&D센터가 삼성그룹의 연구·개발 거점으로 부상하는 만큼 이 회장이 완공식에 참석해 '뉴삼성' 비전과 관련한 구체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스마트폰·가전·TV 생산 공장을 둔 인도, 스마트폰 생산 공장이 있는 인도네시아, 주방가전 공장이 있는 말레이시아도 주요 예상 출장지로 꼽힌다. 재판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

이 회장은 현재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금요일에는 3주 간격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에 출석 중이다.

거리가 멀지만 미국도 출장 후보지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4조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공장 완공 시기는 2024년 하반기다.

착공식은 내년 초 열릴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렉 애보트 텍사스주지사 등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이 회장의 미국 방문 가능성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정식 회장 직함을 걸고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대외 행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불안정한 대내외 경영 환경의 돌파구를 찾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