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그만두고 스타트업 뛰어든 두 사람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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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쪽만 하라고 했다면 안왔을 거예요. 김앤장이 법률 분야 경험을 쌓기엔 최고의 회사거든요. 제가 김앤장을 나와 스타트업에 합류한 건 새로운 비즈니스를 경험하면서 제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임재준 뷰노 경영기획본부장)
"변호사는 업무 특성 상 클라이언트 한 명의 문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일이잖아요. 그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전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창업이라는 선택지였습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임재준 본부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5년차였던 2019년 회사를 그만두고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뷰노에 왔다. 뷰노 합류 2년 후 코스닥 상장을 이끌어냈다. 정지원 대표 역시 김앤장에서 4년 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8년 창업을 결심했다. 첫 창업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영양제 솔루션 회사인 알고케어를 창업했다. 왜 이들은 국내 대표 로펌인 김앤장을 나와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한경 긱스(Geeks)가 두 사람을 인터뷰했다.
돌이켜보니 자신은 평소에 아이디어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정 대표는 "일상적으로도 생활에 불편한 것들이 눈에 보이고, '이걸 이렇게 개선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그럼 나도 창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는 업무 특성이 클라이언트 한 명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또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나는 여러 명에게 사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공동창업 제의가 왔다. P2P 플랫폼 방식으로 개인투자자끼리도 주식대차 공매도가 가능하도록 만든 서비스를 만들었다. 정 대표의 첫 창업이었다.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 서비스 1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중간에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로펌은 직원끼리 협업하는 방법이나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 방법론을 따로 배우지 않아요.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협업이 되는 구조인데, 스타트업은 한 조직이 같이 일하는 방법을 만드는 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걸 이 때 배웠습니다."
정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또 새롭게 도전했다. 그가 본 시장은 헬스케어였다. 정 대표는 "AI와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분야의 성장성이 높다고 보였다. 그런데 AI와 엔터 쪽은 이미 너무 잘하는 1등이 있다. 헬스케어는 아직 1등 기업이 없고 그래서 내가 잘만 한다면 1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중 선택한 게 영양제 시장이었다. "누군가 '나 오늘부터 건강 챙겨야지' 했을 때 현실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이 영양제다. 그런데 영양제를 더 쉽게, 잘 먹게 해줄 솔루션은 너무 없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AI와 IoT 기기 등을 활용한 개인 맞춤 영양제 서비스를 개발했다. 2년 연속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았다. 정 대표는 "제품 개발하는 데 되게 힘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80점짜리 제품을 만드는 게 10만큼 힘들면 90점짜리 만드는 거는 그 두배씩 힘들더라고요. 저는 살아온 경로도 그렇고, 완벽하게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많은데 제품 개발할 때도 그렇게 욕심을 냈어요. 어떤 분은 제게 '오버 엔지니어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은 기획 단계에서 너무 힘쓰지 말고 소비자에게 테스트를 해보자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첫 창업 실패의 경험에 기반해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도 신경썼다. "두번째 창업했을 때는 조직문화 하시는 분을 여섯번째 멤버로 뽑았어요. 엄청 빨리 뽑은 거죠. 그만큼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변호사들에게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시작해선 안 된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배 세배씩 걸린다. 나는 무조건 빨리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는 조바심이 나고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창업한 걸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결과가 돌아오는 주기가 굉장히 짧습니다. 예전엔 3개월마다, 1년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했다면 지금은 그게 한달 주기 정도로 줄어든 것 같아요."
창업에 관심있는 변호사 후배들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고도 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제한이 없습니다. 자신의 빠른 성장을 원하는 분들께는 정말 창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는 헬스케어와 형사 분야를 담당하는 변호사였다. "스타트업이 직접 김앤장을 쓰긴 어렵지만, 김앤장 입장에서도 좋은 스타트업과 미리 관계를 잘 쌓으면 나중에 그 스타트업이 성장해 고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률 자문 형식으로 관계를 쌓는 거죠. 그래서 당시 떠오르는 산업이 뭔지 수소문을 했고요. 그 때 소개받았던 곳이 바로 뷰노였습니다."
의료 AI 분야를 이끌겠다는 뷰노 창업자를 만나 회사의 비전을 들었다. 이후 따로 AI와 헬스케어를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이 산업은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가장 처음 적용될 분야가 바로 의료라고 봤다"고 했다. 규제산업인 의료 분야에 뛰어든 뷰노도 임 본부장 같은 법률 전문가가 필요했다. "패션 스타트업이라면 초기부터 변호사는 필요 없다. 하지만 의료는 규제가 강하다보니 규제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그렇다면 변호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 당시 임 본부장의 판단이었다.
"이 산업은 분명히 성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형로펌엔 디지털 헬스케어를 피부로 겪어본 전문가가 없었어요. 설사 뷰노가 잘 되지 않더라도, 내가 직접 몸 담고 경험하고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이 제 커리어에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좋은 차별화 포인트가 될 거라고 봤죠."
미국 유학을 함께 준비하고 있던 가족들은 처음엔 걱정했다. "김앤장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도 많았죠. 네임밸류도 좋고, 안정적이고, 급여도 많고. 근데 그걸 다 포기하고 한번 스타트업에서 해보겠다고 하니까요." 월급이 깎이는 것도 감수했다.
막상 김앤장을 떠날 땐 아쉬움도 컸다고 했다. "지적탐구를 하기엔 최고의 조직이죠. 새로운 지식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고 같이 고민하고. 김앤장에 있는 좋은 분들과 좋은 담론으로 토론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뷰노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는 로펌과 너무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직원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로펌은 깔끔한 구두에 정장, 정제된 말이 필요한 집단이었고, 스타트업은 그보다 훨씬 자유롭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힘있게 나가는 집단으로 옷차림부터 달랐다"고 했다. 하지만 적응 후엔 결국 로펌과 스타트업에 비슷한 점도 많다는 게 보였다. "김앤장도 위계가 세진 않아요. 워낙 토론을 많이 하다보니 수평적 관계죠. 스타트업 역시 수평적 관계에서 토론하고 결정한다는 게 비슷합니다."
임 본부장은 초기 스타트업에서 비즈니스를 쌓아올려가면서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대기업은 개인의 롤이 정해져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면 회사를 움직이게 만들려면 뭐가 필요한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수익창출에 대한 부담도 당연히 있고, 초조하기도 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지난 5월 AI 진단업계에서 최초로 뷰노의 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 ‘뷰노메드 딥카스’가 선진입 의료기술로 지정됐다. 8월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포함됐다. 임 본부장은 이게 정말 뜻깊다고 했다. "의료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보험 영역이 중요한데 오래 준비하고 설득하면서 이뤄낸 결과"라며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는 계속 들릴 거다. 시장이 포화상태다. 예전엔 평생 직장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인식이 약해졌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임 본부장은 "로펌보다 편할 거라는 기대로는 스타트업에 절대 가지 말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직이 근로시간도 길고 힘든데 그게 맞먹는 힘듦은 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가치는 무엇일까.
"전문직이 속한 조직에선 전문직이 주인공들이에요. 그런데 회사는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같이 힘을 모아서 이 회사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경험하고 부딪힌다면 보답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변호사는 업무 특성 상 클라이언트 한 명의 문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일이잖아요. 그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전에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창업이라는 선택지였습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
임재준 본부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5년차였던 2019년 회사를 그만두고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뷰노에 왔다. 뷰노 합류 2년 후 코스닥 상장을 이끌어냈다. 정지원 대표 역시 김앤장에서 4년 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8년 창업을 결심했다. 첫 창업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영양제 솔루션 회사인 알고케어를 창업했다. 왜 이들은 국내 대표 로펌인 김앤장을 나와 스타트업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한경 긱스(Geeks)가 두 사람을 인터뷰했다.
"예상보다 두배 세배 걸리지만…성장 원한다면"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어릴 때부터 창업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공부 잘하면 서울대 법대 가라.' 이렇게 정해진 경로만 생각했다.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정 대표는 "지방 출신이다보니 더욱 더 다른 쪽 길은 잘 몰랐다. 원래 모범생 DNA가 있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와 로스쿨을 졸업한 뒤 김앤장에 입사해 변호사로 일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엘리트 코스였다. 더 넓은 세계를 본 건 김앤장에서였다. 정 대표는 "김앤장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할 때 법적으로 저촉되는 게 없는지, 규제에 걸리는 건 없는지 컨설팅하는 업무를 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의 신사업 내용을 많이 알게 됐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보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다. 나도 저런 일을 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와 창업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창업 관련 행사에 몰래 갔다가 회사에 걸려 혼나기도 했다.돌이켜보니 자신은 평소에 아이디어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정 대표는 "일상적으로도 생활에 불편한 것들이 눈에 보이고, '이걸 이렇게 개선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그럼 나도 창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는 업무 특성이 클라이언트 한 명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또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나는 여러 명에게 사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공동창업 제의가 왔다. P2P 플랫폼 방식으로 개인투자자끼리도 주식대차 공매도가 가능하도록 만든 서비스를 만들었다. 정 대표의 첫 창업이었다.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 서비스 1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중간에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로펌은 직원끼리 협업하는 방법이나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 방법론을 따로 배우지 않아요.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협업이 되는 구조인데, 스타트업은 한 조직이 같이 일하는 방법을 만드는 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걸 이 때 배웠습니다."
정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또 새롭게 도전했다. 그가 본 시장은 헬스케어였다. 정 대표는 "AI와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분야의 성장성이 높다고 보였다. 그런데 AI와 엔터 쪽은 이미 너무 잘하는 1등이 있다. 헬스케어는 아직 1등 기업이 없고 그래서 내가 잘만 한다면 1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중 선택한 게 영양제 시장이었다. "누군가 '나 오늘부터 건강 챙겨야지' 했을 때 현실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이 영양제다. 그런데 영양제를 더 쉽게, 잘 먹게 해줄 솔루션은 너무 없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AI와 IoT 기기 등을 활용한 개인 맞춤 영양제 서비스를 개발했다. 2년 연속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며 인정받았다. 정 대표는 "제품 개발하는 데 되게 힘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80점짜리 제품을 만드는 게 10만큼 힘들면 90점짜리 만드는 거는 그 두배씩 힘들더라고요. 저는 살아온 경로도 그렇고, 완벽하게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많은데 제품 개발할 때도 그렇게 욕심을 냈어요. 어떤 분은 제게 '오버 엔지니어링'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은 기획 단계에서 너무 힘쓰지 말고 소비자에게 테스트를 해보자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첫 창업 실패의 경험에 기반해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도 신경썼다. "두번째 창업했을 때는 조직문화 하시는 분을 여섯번째 멤버로 뽑았어요. 엄청 빨리 뽑은 거죠. 그만큼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변호사들에게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시작해선 안 된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배 세배씩 걸린다. 나는 무조건 빨리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는 조바심이 나고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창업한 걸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결과가 돌아오는 주기가 굉장히 짧습니다. 예전엔 3개월마다, 1년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했다면 지금은 그게 한달 주기 정도로 줄어든 것 같아요."
창업에 관심있는 변호사 후배들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고도 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제한이 없습니다. 자신의 빠른 성장을 원하는 분들께는 정말 창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로펌보다 편할 거라는 기대론 오지마라"
임재준 뷰노 경영혁신본부장은 로펌이 보내주기로 한 미국 유학을 앞두고 2019년 뷰노에 합류했다. 경찰대 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해 변호사가 된 임 본부장은 당시 김앤장 입사 5년 차였다. 그는 "회사가 보내주는 미국 유학을 가는 게 좋을지, 스타트업에서 비즈니스 경험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이 됐다. 결국 유학은 다른 많은 변호사들도 가는 것이고, 나는 새로운 산업을 경험해보면서 내 경쟁력을 만들어보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그는 헬스케어와 형사 분야를 담당하는 변호사였다. "스타트업이 직접 김앤장을 쓰긴 어렵지만, 김앤장 입장에서도 좋은 스타트업과 미리 관계를 잘 쌓으면 나중에 그 스타트업이 성장해 고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률 자문 형식으로 관계를 쌓는 거죠. 그래서 당시 떠오르는 산업이 뭔지 수소문을 했고요. 그 때 소개받았던 곳이 바로 뷰노였습니다."
의료 AI 분야를 이끌겠다는 뷰노 창업자를 만나 회사의 비전을 들었다. 이후 따로 AI와 헬스케어를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이 산업은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가장 처음 적용될 분야가 바로 의료라고 봤다"고 했다. 규제산업인 의료 분야에 뛰어든 뷰노도 임 본부장 같은 법률 전문가가 필요했다. "패션 스타트업이라면 초기부터 변호사는 필요 없다. 하지만 의료는 규제가 강하다보니 규제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그렇다면 변호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 당시 임 본부장의 판단이었다.
"이 산업은 분명히 성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형로펌엔 디지털 헬스케어를 피부로 겪어본 전문가가 없었어요. 설사 뷰노가 잘 되지 않더라도, 내가 직접 몸 담고 경험하고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이 제 커리어에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좋은 차별화 포인트가 될 거라고 봤죠."
미국 유학을 함께 준비하고 있던 가족들은 처음엔 걱정했다. "김앤장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만류도 많았죠. 네임밸류도 좋고, 안정적이고, 급여도 많고. 근데 그걸 다 포기하고 한번 스타트업에서 해보겠다고 하니까요." 월급이 깎이는 것도 감수했다.
막상 김앤장을 떠날 땐 아쉬움도 컸다고 했다. "지적탐구를 하기엔 최고의 조직이죠. 새로운 지식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고 같이 고민하고. 김앤장에 있는 좋은 분들과 좋은 담론으로 토론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뷰노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는 로펌과 너무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직원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로펌은 깔끔한 구두에 정장, 정제된 말이 필요한 집단이었고, 스타트업은 그보다 훨씬 자유롭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힘있게 나가는 집단으로 옷차림부터 달랐다"고 했다. 하지만 적응 후엔 결국 로펌과 스타트업에 비슷한 점도 많다는 게 보였다. "김앤장도 위계가 세진 않아요. 워낙 토론을 많이 하다보니 수평적 관계죠. 스타트업 역시 수평적 관계에서 토론하고 결정한다는 게 비슷합니다."
임 본부장은 초기 스타트업에서 비즈니스를 쌓아올려가면서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대기업은 개인의 롤이 정해져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면 회사를 움직이게 만들려면 뭐가 필요한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수익창출에 대한 부담도 당연히 있고, 초조하기도 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지난 5월 AI 진단업계에서 최초로 뷰노의 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 ‘뷰노메드 딥카스’가 선진입 의료기술로 지정됐다. 8월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포함됐다. 임 본부장은 이게 정말 뜻깊다고 했다. "의료 분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보험 영역이 중요한데 오래 준비하고 설득하면서 이뤄낸 결과"라며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는 계속 들릴 거다. 시장이 포화상태다. 예전엔 평생 직장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인식이 약해졌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임 본부장은 "로펌보다 편할 거라는 기대로는 스타트업에 절대 가지 말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직이 근로시간도 길고 힘든데 그게 맞먹는 힘듦은 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가치는 무엇일까.
"전문직이 속한 조직에선 전문직이 주인공들이에요. 그런데 회사는 본인이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같이 힘을 모아서 이 회사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경험하고 부딪힌다면 보답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