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왜, 언제나, 정치는 경제를 망치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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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로 연금개혁 거부
한국 정치 저열성 보여준 참사
미래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도
정치인들이 번번이 가로막아
'헌병'과 '천사'가 판치는 곳에서
누가 바보처럼 일하고 공부하겠나
조일훈 논설실장
한국 정치 저열성 보여준 참사
미래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과제도
정치인들이 번번이 가로막아
'헌병'과 '천사'가 판치는 곳에서
누가 바보처럼 일하고 공부하겠나
조일훈 논설실장
경제기자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기억 중 하나는 2018년 8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장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보건복지부 보고에 퇴짜를 놓으면서였다. 당시 고갈 시기가 더 빨라진다는 4차 재정추계가 나온 터라 연금의 전면적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어떤 시나리오를 만들더라도 보험료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실망과 탄식을 넘어 지도자로서 덕성을 의심케 하는 비겁함이었다. 연금 고갈 시기가 2057년이므로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앞으로 10년 좀 넘게 지나면 연금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진다.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돼 있다. 기금이 빠르게 줄어들면 청년들은 보험료 납부를 거부하고 장년층은 조기 수령을 하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한 달이라도 더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도록 해야 저출산 역풍을 넘어설까 말까다.
그럼에도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눈높이’ 타령을 놓지 못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주 의원이 얼마 전 SNS에 올린 글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연금개혁을 하겠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
정치만 놓고 보면, 나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한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부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조직화된 이익집단, 직역단체, 정치화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폐쇄적 지역정서와 떼법에 거리낌 없이 영합한다. 그런 연유로 미래 세대를 위한 제도적 정비, 첨단 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 선진국에 눈높이를 맞춘 인프라 구축이 그토록 어렵고 더디게 진행되거나 좌초하고 마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기에 우버와 타다를 금지하고 원격의료와 의료관광을 좌초시키는 것이 한국의 정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수도권 규제, 금산분리 규제,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데도 노조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다. 노조에 대한 법적 보호는 과잉을 넘어 손해배상 소송까지 막겠다는 ‘노란봉투법’도 등장시키고 있다. 조직화된 대형 사업장 근로자들이 비노조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약탈적 불의도 계속 용인되고 있다. 자유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조차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인들에게 남는 것은 나랏돈을 입맛대로 뿌리거나 헌병처럼 시장에 간섭을 일삼는 일뿐이다. 농업시장의 기득권 보호는 뿌리 깊은 고질이다. 그럼에도 최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기가 막힌다. 과잉생산된 쌀을 정부가 무조건 사주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가뜩이나 소비가 줄어 정부 창고마다 쌀가마가 넘쳐나는 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밀은 99%, 콩은 63%를 수입하면서 아까운 달러를 축내고 있다.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구조조정하고 욕망을 삭감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치인들은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간다. 국민 서민 민생을 넣고 ‘착한’이라는 천사적 단어와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현혹한다. 맨날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투표 때만 대접받는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거품이 언젠가 터지듯이 포퓰리즘도 경제 파탄이라는 모습으로 종말을 맞이한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기업과 국민이 그 시기를 힘겹게 늦추고 있을 뿐이다.
시장은 정부보다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찬찬히 생각하고 관찰해보면 안다. 정치가 인류 삶의 질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시장에 정치가 들어가면 특권과 반칙과 약탈이 난무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왜 그토록 많은 정치인과 주변 사람들이 연루됐겠나. 성남시가 주도한 대장동 개발사업은 왜 형님-동생으로 엮인 소수의 사람에게만 엄청난 이권을 챙겨줬겠나. 우리 국민이 저마다 ‘정치9단’을 자임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 전체가 정치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은 일터 대신 공짜와 특혜를 찾아 권력 주변을 배회한다. 이런 나라에선 경제와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헌병’과 ‘천사’가 득세하는 곳에서 누가 바보처럼 지식을 쌓고 기술을 연마하며 경쟁시장에 뛰어들겠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
그럼에도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눈높이’ 타령을 놓지 못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주 의원이 얼마 전 SNS에 올린 글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연금개혁을 하겠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
정치만 놓고 보면, 나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비관한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부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조직화된 이익집단, 직역단체, 정치화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폐쇄적 지역정서와 떼법에 거리낌 없이 영합한다. 그런 연유로 미래 세대를 위한 제도적 정비, 첨단 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 선진국에 눈높이를 맞춘 인프라 구축이 그토록 어렵고 더디게 진행되거나 좌초하고 마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기에 우버와 타다를 금지하고 원격의료와 의료관광을 좌초시키는 것이 한국의 정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수도권 규제, 금산분리 규제,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데도 노조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다. 노조에 대한 법적 보호는 과잉을 넘어 손해배상 소송까지 막겠다는 ‘노란봉투법’도 등장시키고 있다. 조직화된 대형 사업장 근로자들이 비노조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약탈적 불의도 계속 용인되고 있다. 자유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조차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니 정치인들에게 남는 것은 나랏돈을 입맛대로 뿌리거나 헌병처럼 시장에 간섭을 일삼는 일뿐이다. 농업시장의 기득권 보호는 뿌리 깊은 고질이다. 그럼에도 최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기가 막힌다. 과잉생산된 쌀을 정부가 무조건 사주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가뜩이나 소비가 줄어 정부 창고마다 쌀가마가 넘쳐나는 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밀은 99%, 콩은 63%를 수입하면서 아까운 달러를 축내고 있다.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구조조정하고 욕망을 삭감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치인들은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간다. 국민 서민 민생을 넣고 ‘착한’이라는 천사적 단어와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현혹한다. 맨날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투표 때만 대접받는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거품이 언젠가 터지듯이 포퓰리즘도 경제 파탄이라는 모습으로 종말을 맞이한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기업과 국민이 그 시기를 힘겹게 늦추고 있을 뿐이다.
시장은 정부보다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찬찬히 생각하고 관찰해보면 안다. 정치가 인류 삶의 질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든 것이 아니다. 시장에 정치가 들어가면 특권과 반칙과 약탈이 난무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왜 그토록 많은 정치인과 주변 사람들이 연루됐겠나. 성남시가 주도한 대장동 개발사업은 왜 형님-동생으로 엮인 소수의 사람에게만 엄청난 이권을 챙겨줬겠나. 우리 국민이 저마다 ‘정치9단’을 자임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 전체가 정치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중독된 사람들은 일터 대신 공짜와 특혜를 찾아 권력 주변을 배회한다. 이런 나라에선 경제와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헌병’과 ‘천사’가 득세하는 곳에서 누가 바보처럼 지식을 쌓고 기술을 연마하며 경쟁시장에 뛰어들겠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