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어제 국회 시정연설은 안팎의 경제난과 북한 도발의 안보 위기에 대한 극복 의지를 밝히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새 정부 첫 예산안의 대(對)국회·대국민 설명이 거대 야당의 불참 속에 행해진 것은 유감스럽지만, 경제와 안보 양대 위기에 대한 정부의 돌파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복합 불황의 파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도 내년 경제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전방위로 고조되는 와중에 중국까지 시진핑 3연임 체제를 굳혀 패권주의 행보가 우려된다. 안보에서도 내년에는 ‘코리아 리스크’가 부각될 공산이 다분해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이런 엄중한 상황을 가감 없이 짚으면서 두 달 전 정부안으로 확정한 2023년도 예산안의 편성 배경과 지향점 등을 재차 설명한 것이었다.

큰 틀에서는 국무회의 의결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경제 문제에서 긴축예산·건전재정과 취약계층 지원 의지, 수출과 미래산업 육성 방침이 대통령의 말로 재차 확인됐다. 정부가 전면적 규제 혁파와 기업 기 살리기 등 민간부문 활력의 극대화 노력을 병행하며 위기 때 고유의 역할 수행에 만전을 다하기를 당부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외쳐온 본연의 ‘자유’와 규제개혁이 일선 공무원에게 제대로 퍼지지 않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민관 합동 규제개혁기구인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 민간 팀장인 김태윤 한양대 교수의 쓴소리는 이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그는 어제자 한경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규제를 풀자고 아무리 외쳐도 의미가 없다. 일선 공무원이 절대 안 풀어준다”고 했다. 규제 풀기가 감사 대상이 된다는 공직 내부의 문제점과 “규제를 쥐고 있어야 퇴직 후 갈 자리가 많아진다”는 그의 진단에 대통령실 참모진부터 귀 기울이기 바란다.

대통령이 역설한 건전재정, 안보 강화, 약자 복지는 하나같이 야당도 외면해선 안 되는 국가적 현안이다. 정치에 여야가 있다지만, 정파 입장을 뛰어넘는 과제도 있는 것이다. 꼼꼼한 심의로 정부안에 하자가 없는지 살피며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기본 책무다. 법정 시한은 40일도 채 안 남았다. 행여라도 거대 야당이 긴축예산의 큰 틀을 흔들고 무책임한 선심성 재정지출을 마구 끼워 넣어선 곤란하다. 일각에서는 건전재정의 훼손을 우려하며 “야당이 아예 예산안 심의 자체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썰렁한 말까지 한다. 물론 냉소적 비판이겠지만, 이런 말의 함의를 살피며 정부가 고심해 짠 긴축 예산안에 야당도 적극 부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