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무산된 종부세 기준 상향…이면에는 '치밀한 표 계산'
국세청이 종부세 기준 관련 법 시한으로 정한 20일을 넘기면서 올해 종부세 기준 상향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 때문이다. 올해 3월 대선 당시까지만 해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 완화를 주장했던 것을 감안하면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각종 대책으로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이 이미 크게 감소했다며 추가 감세는 '부자 감세'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민주당 관계자들과 대화해 보면 여기에는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판단이 먼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 기준 상향으로 덕을 볼 사람들은 대부분 여당 지지자들로, 앞으로도 민주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낮은 계층이라는 것이다.

종부세 둘러싼 정부와 민주당의 입장차

종부세 과세 기준 상향은 사실상 무산됐지만 올해 종부세 부담은 이미 상당히 가벼워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 정부가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정부 시행령으로 바꿀 수 있어 야당 의견과 상관 없이 조정 가능하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종부세를 도입하던 당시, 지나친 세부담 증가를 우려해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일부를 덜어내고 나머지에 종부세를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예를 들어 공정시장가액비율이 100%로 유지됐다면, 공시가격 기준 종부세 과표가 1억원인 1주택자에는 1.4%의 세율을 적용돼 140만원의 종부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가액비율이 60%로 내려가면 과표 자체가 6000만원으로 줄어들고, 내야할 종부세도 84만원으로 감소한다.

민주당은 이같은 점을 들어 1주택자의 종부세 부담 완화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다만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2022년 주택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힌 바 있는만큼, 이를 달성하려면 추가 대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안이 올해에 한해 종부세 과세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하는 것이다. 과세기준인 공시가격이 시세대비 20~30% 낮은 점을 감안하면, 시세를 기준으로는 종부세 과세 대상이 16억원에서 20억원으로 상향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야 가능한만큼 민주당이 반대하면 적용할 수 없다. 공정시장가액비율 하향은 단순히 종부세 부담을 줄이는데 그쳤다면, 과세기준 상향은 상당수 주택이 종부세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적용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됐다.

투표성향과 고가주택 분포

끝내 무산된 종부세 기준 상향…이면에는 '치밀한 표 계산'
이같은 종부세 개편을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누리는 이들은 시가 16억원에서 20억원 사이의 주택을 보유한 이들이다. 과세기준이 상향되면서 종부세를 한푼도 내지 않을 수 있어서다.

20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이들도 과세기준이 높아지며 과표가 줄어들어 종부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 자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공시가격 29억6900만원 고가주택 소유자의 경우 종부세 부담이 1057만1000원에서 396만1000원까지 절반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고가주택 대부분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여당 지지세가 눈에 띄게 높다는 것이다. 시가와 공시가격 사이 차이, 조세 시점의 문제 등이 있지만 과거 조사를 통해 실태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2019년말 KB부동산 리브온 데이터에 따르면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이 강남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7%에 이르렀다. 강남구의 뒤는 서초구(66.0%)와 송파구(48.4%), 용산구(37.0%) 등이 뒤를 이었다. 역대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압도해온 지역이다.

강남권 외에는 양천구(17.4%), 종로구(12.8%), 영등포구(10.7%) 등에서 15억원 이상 아파트 비중이 높았다. 양당의 지지율이 비슷했던 지역이다.

대신 민주당 지지도가 압도적인 지역에서는 15억원 이상 주택 비중이 낮았다. 강북구와 강서구, 관악구, 금천구,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성북구, 은평구, 중랑구에는 한채도 없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역시 2019년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114 조사에서는 시세 13억원 이상 서울시내 주택 22만9790가구 중 79%에 해당하는 18만903가구가 이른바 '강남3구'에 밀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2년간 집값이 올랐지만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금천구, 관악구 등에서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공시가격 11억원 초과 주택이 한채도 없었다.

강남 1주택자보다 강북 다주택자?

이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추가 종부세 완화는 사실상 '여당 핵심 지지층에만 도움 되는 것'이라는 시각이 민주당 내에 대다수다.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3월 대선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표 차이는 지난해 주택분 종부세 부과 대상자 수와 대략 일치한다. 종부세를 크게 줄여주겠다는 정책은 여당 핵심 지지층에 선물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다른 기재위 소속 민주당 의원 보좌진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놨다.

"과도한 과세가 대선 및 지방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하지만 대상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종부세 부담이 상당 부분 줄어든 가운데, 현재 종부세 납세자 중에는 세금 부담을 줄여준다고 향후 민주당 지지로 옮겨오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신 민주당은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에 더욱 신경을 쏟는 분위기다. 지난 정부까지 다주택자가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고 공격했던만큼 일견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강북 주요 자치구에 고가 주택은 없더라도 여러 채의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들은 많을 수 밖에 없어서다. 노원구에 시가 8억원의 주택을 소유하고, 일산 등 신도시에 시가 5억원의 주택을 보유해 종부세 과세 대상이 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8월 다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11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도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3주택 이상을 소유했거나 조정대상지역내 2주택을 소유했을 경우 종부세 과세 기준을 5억원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역구가 노원병인 김 의장을 비롯해 김병욱(분당을) 박상혁(김포을) 박성준(중구성동을) 서영교(중랑갑) 오기형(도봉을) 이해식(강동을) 홍기원(평택갑) 의원 등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나섰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다주택자들의 세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다주택자의 과세기준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세율도 큰 폭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2주택자 이하의 종부세 최고세율은 3.0%지만,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종부세 최고세율은 6.0%에 달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