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18일까지도 다음 메일 등 카카오 일부 서비스가 복구되지 않았다. 카카오 직원들이 이날 경기 성남 분당구에 있는 사옥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나오고 있다.      허문찬  기자
지난 15일 발생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18일까지도 다음 메일 등 카카오 일부 서비스가 복구되지 않았다. 카카오 직원들이 이날 경기 성남 분당구에 있는 사옥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나오고 있다. 허문찬 기자
경기 성남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 플랫폼 서비스 카카오의 주요 기능이 중단된 지 사흘째지만 여전히 다음 메일 등 일부 서비스는 완전히 복구되지 않고 있다. 카카오의 이번 ‘먹통’ 사태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카카오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1) 독점적 점유율에 취했다

카카오는 전 국민이 쓰는 서비스다. 올해 2분기 기준 카카오톡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4750만 명에 달한다. 초고령층과 어린이 등을 제외한 전 국민이 거의 모두 가입했다. 서비스가 시작된 2010년 무렵 카카오톡은 문자 메시지와 큰 차이가 없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였지만 현재는 쇼핑, 송금, 영상, 메일 등은 물론 암호화폐 전송까지 할 수 있는 ‘올인원’ 서비스로 성장했다.

한때 텔레그램 등 보안성이 강조된 해외 앱으로의 ‘망명’이 이어진 적도 있지만 카카오톡 이용자 수는 2012년 이후 4000만 명 이상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앱의 안정성과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추가 투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잡은 고기’가 워낙 많다 보니 효과가 드러나지 않는 데 돈 쓸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이 늦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보보호 등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올해 각사가 공개한 정보보호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의 정보보호 전담인력은 107명, 관련 비용은 350억원이지만 카카오의 전담인력은 61명, 비용은 140억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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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부 입김’ 센 지배구조도 문제

카카오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외부 입김이 센 지배구조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카카오는 계열사 확장 과정에 재무적투자자(FI)를 다수 끌어들였다.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보다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주요 계열사 지분 중 상당 부분을 사모펀드(PEF)에 매각해 자금을 조달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TPG캐피털에서 2500억원,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서 2500억원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자받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TPG컨소시엄(TPG·한국투자파트너스·오릭스)이 24%, 칼라일이 6.2%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17.6%를 보유 중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FI들이 주주로 참여하면서 회사의 미래 전략에 ‘외풍’이 자주 불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직원에게 지급한 스톡옵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법상 스톡옵션 한도인 발행주식 수의 10%를 거의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년간 자회사 분할상장 등의 바람을 타고 경영진 사이에서 ‘출구전략’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데이터센터 건립과 같은 투자 의사 결정을 주도할 사람이 없었다는 평가다.

(3) ‘글로벌 스탠더드’는 뒷전

내수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과 이와 대조되는 해외에서의 낮은 존재감은 카카오를 ‘골목대장’으로 만들었다. 카카오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6조1366억원, 영업이익은 5949억원을 기록했다. 이 매출의 90%는 국내에서 나온다. 게임, 만화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해외 매출이 있지만 비중이 10% 수준으로 낮다. 한 보안업체 대표는 “카카오가 결코 규모가 작은 회사는 아니지만 글로벌 테크기업에 기본적인 데이터센터 분산, 장애 시 복구계획 등이 부족했던 건 국내 시장에서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카카오의 문제는 국내 정보기술(IT) 생태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카카오의 보안과 데이터 관리 수준은 한국 IT 생태계 전체의 수준과 직결돼 있다. 한 IT 소프트웨어 대표는 “카카오의 경쟁상대가 없다 보니 위기감도 희박해진 것”이라며 “연못 속 고래 역할에 그치지 말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고 해외 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은/이승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