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도지사 "인간과 자연이 함께 행복한 세상 만들기 위한 토대"
제주도의회 "생태법인 필요성 공감, 관심 가지고 노력하겠다"

국내 멸종위기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줌in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생태법인 시작은 제주!
알듯 말듯 낯선 생태법인 제도는 무엇이고 왜 필요한 것일까.

국내 수족관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방류를 앞두고 자연과 공존을 위해 제주에서부터 불고 있는 다양한 논의와 시도를 살펴본다.

◇ 찢기고 잘리고…위험 도사리는 제주 바다
남방큰돌고래 30∼40여 마리가 종종 집단으로 먹이 사냥을 하는 제주 성산 앞바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제트스키 한 대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돌고래 무리의 한 가운데를 그대로 훑고 지나갔다.

물고기를 쫓던 돌고래들은 순간, 먹이활동을 멈추고 혼비백산 달아났다.

제트스키는 다시 방향을 바꿔 동작이 느린 새끼를 데리고 간신히 도망가는 어미를 뒤쫓기 시작했다.

거센 물보라와 함께 수면 위를 '탁! 탁!' 치며 질주하더니 바싹 붙어 헤엄치던 어미와 새끼를 따라잡고는 기어이 둘을 떼어놓았다.

어미를 놓친 새끼 돌고래는 극도의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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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새끼 곁으로 달려간 어미는 또다시 덮쳐올지 모를 제트스키를 피해 허둥지둥 먼바다로 달아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6년 전 제주 앞바다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모터보트 스크루에 걸려 지느러미가 잘리거나 찢기고, 낚싯줄이 지느러미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가 난 남방큰돌고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물에 걸려 죽는 남방큰돌고래를 해부해보면 위에서 플라스틱 조각, 낚싯줄 뭉치, 낚싯바늘이 나오곤 한다.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는 중형 돌고래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제주도 연안에서만 110∼120여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에 약 3천 마리, 일본 규슈에 300여 마리 등이 군집을 이뤄 서식하는 것과 비교하면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는 세계에서 가장 적은 군집에 속한다.

인간에 의한 해양 생태계 교란으로 인해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가 정상적으로 증가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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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연안은 해상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선박과의 충돌 위험, 어업활동에 따른 혼획, 해상풍력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저주파소음 등 여러가지 환경이 남방큰돌고래의 생존에 많은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해역에서 어민이 설치해 놓은 정치망에 걸려 다치거나 원인 모를 이유로 폐사하는 돌고래는 늘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청과 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에 따르면 상괭이와 남방큰돌고래 등 고래류가 이와 같은 이유로 제주 연안에서 폐사한 채 발견된 사례는 2013년 10마리, 2014년 13마리, 2015년 28마리, 2016년 31마리, 2017년 52마리, 2018년 28마리, 2019년 52마리, 2020년 68마리, 2021년 51마리, 2022년 10월 현재 32마리 등이다.

한때 제주도가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제주도 학술용역심사위원회가 천연기념물 지정 내용을 담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및 서식지 문화재적 가치 조사 용역'의 타당성을 심사해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정작 용역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남방큰돌고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경우 관리주체가 기존 해양수산부와 문화재청으로 이원화돼 효율적인 보호가 이뤄질 수 없다는 등의 이유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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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법인 시작은 제주가 적합"
해가 갈수록 인간에 의한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주 연안의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해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법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생태법인은 사람 외에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법인격을 부여받으면, 기업이 국가·개인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듯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주체가 된다.

지난달 세계적인 지성들이 함께 지구촌 평화 해법을 모색하는 제17회 제주포럼에서 제주대학교 진희종 박사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생태 위기는 인류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현세대가 기후·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을 떠안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 기후·생태 위기의 원인이 인류의 오랜 인간 중심적 자연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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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연을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일방적인 수단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며 "지구촌 기후·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법인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게 바로 멸종위기에 처한 제주 연안의 남방큰돌고래다.

오영훈 제주지사 역시 생태법인 도입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 지사는 지난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태법인은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같이 멸종 위기에 놓인 자연생명을 보호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 지사는 "생태법인의 시작은 제주가 적합하며 의미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며칠 전 모슬포해녀분들이 말씀하시기를 바닷속에서 돌고래를 만나면 조업 중인 해녀들과 부딪힐 수 있으니 '알로 알로가'(아래로 헤엄쳐서 가라)'라고 하는데 이 말을 알아듣고 돌고래가 피해서 간다고 하셨다"며 "자연과의 공존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우리 해녀들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도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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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사는 "2017년 뉴질랜드 의회에서 원주민 마우리족의 삶의 터전인 환가누이강 보호를 위해 법인 지위를 부여하는 법률을 만든 사례가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 바다에 정착해 살고 있고,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기 직전 상태인 '준위협종'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오 지사는 "(생태법인 도입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일은 남방큰돌고래와 같이 멸종 위기에 처한 생명을 인류가 함께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하면서 공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제주도의회, 도민사회와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민간 차원의 연구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생태법인 제도 도입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 개정 또는 조례 제정을 통해 가능하다.

법 개정을 제주도 차원에서 할 수는 없지만 조례 제정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강연호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생태법인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며 "조례 제정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상임위 의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