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번지수 잘못 짚은 스타트업 정책
얼마 전 발표된 내년 정부 예산안을 항목별로 보면 ‘산업·중기’ 분야가 가장 눈에 띈다. 7개 주요 항목 중 예산 삭감 폭이 가장 크다. 전년 대비 무려 18%가 줄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산업·중기 예산이 쪼그라든 가장 큰 이유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한시적 지원이 종료된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삭감 폭을 설명하기 힘들다. 창업·벤처 분야는 물론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 혁신 분야, 특허 지원 등 지식재산 분야까지 줄줄이 깎였다. 대표적인 게 벤처캐피털(VC) 운용사들이 펀드를 만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종잣돈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 예산이다. 내년 예산이 3135억원 규모로, 올해보다 39.7% 감소했다.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확립하겠다며 가장 만만한 중소기업, 스타트업 육성 예산을 후려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민간 주도로? 허용은 했나

정부가 들이댄 논리는 “이제 정부는 할 만큼 했고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부처 장관은 “언제까지 정부가 견인해야 하느냐”고 했다. 사실 정부 논리는 틀린 게 아니다. 정책적 목적을 가진 정부 자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스타트업 육성 기능이 왜곡된다. 미국처럼 액셀러레이터와 같은 민간 전문기관이 창업자들을 키우고, 민간 투자사들이 자금을 대거나 경영권을 인수하는 선순환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국처럼 민간이 하라’고 하기에 앞서 ‘미국처럼 민간에 허용해줬나’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민간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개인과 기업 자금이 투자 생태계의 큰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회수 시장이 다변화해야 한다. 다양한 만기와 구조의 펀드들이 생겨나야 개인과 기업이 이 시장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회수 시장의 기업공개(IPO)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사모펀드나 기업 계열 벤처캐피털(CVC) 등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이 중간 회수 시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조차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허용한 복수의결권을 우리가 금지했으니 오죽할까.

국가간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스타트업 생태계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가 실리콘밸리의 드레이퍼히어로 연구소의 글로벌 혁신 지수다. 지난해 기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종합 순위는 20위다. 미국이 1위, 중국은 15위다. 혁신 지수는 8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됐는데, 한국의 종합 순위를 가장 많이 깎아 먹는 세부 항목이 공교롭게 벤처캐피털(34위)과 정부 역량(42위)이다. 해외 전문기관이 보기엔 우리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준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아왔고, 투자 기반도 여전히 취약하다는 얘기다.

최근 1~2년 사이 주요국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팔을 걷고 있다. 당장 미국이 그렇다.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중기·벤처기업에 550억달러를 융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전기차, 바이오 등 주력 산업 보호를 위한 법안과 행정명령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100억유로 규모의 정책 펀드를 조성했다. 일본은 올해 스타트업 본격 육성을 위해 새로운 보증제도와 융자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까지 스타트업 투자에 활용할 방침이다. “언제까지 이끌어줘야 하느냐”는 우리 정부의 인식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