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아트페어(프리즈)가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프리즈 마지막날인 지난 5일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아트페어(프리즈)가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프리즈 마지막날인 지난 5일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 5일 동안 서울은 명실상부한 세계 미술의 ‘임시 수도’였다. 해외 미술 전문지들은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관련 소식을 매일 인터넷판 머리기사에 올렸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유력지들은 서도호, 이불 등 아트페어에 ‘출전’한 한국 작가들을 심층 조명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미술 애호가들은 서울로 상경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들은 아시아에서 열린 미술 축제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렇다고 박수 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부 해외 화랑의 ‘얌체 상술’과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2일 시작해 6일 막을 내린 ‘단군 이후 최대 미술 축제’ KIAF-프리즈가 남긴 성과와 과제를 정리했다.

(1) 7만여 명 몰려…“입장권 그만 팔라”

10만명 몰린 KIAF-프리즈…외형은 '초대박' 내실은 '글쎄'
외형으로만 보면 대성공이었다. 먼저 매출. 업계에선 올해 KIAF 매출이 지난해(650억원)보다 늘어난 7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대 최고치다. 프리즈 매출은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관람 열기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비싼 입장권(7만원·1일권 기준)에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비바람에도 7만 명이 넘는 인파가 행사장(서울 삼성동 코엑스)을 가득 메웠다. 작품 훼손을 우려한 프리즈 측이 “입장권 판매를 중지해달라”고 코엑스에 요청할 정도였다. 행사장에선 어린이날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입장 제한 조치’가 수시로 이뤄졌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은 5일 폐막 직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에곤 실레의 작품들을 들고 온 리처드 내기 갤러리 부스 앞에는 폐막 직전까지 50m짜리 인간띠가 늘어섰다. 벨기에 악셀베르보르트 갤러리의 지나 젠킨스 큐레이터는 “서양 미술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보기 어려운 열기”라고 했다. 화랑협회 관계자는 “올해부터 관람객 수 집계 방식을 바꿨는데, 원래 방식대로라면 10만 명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2)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 작가·시장

주요 외신과 예술 전문지들은 행사 1주일 전부터 서울로 특파원을 보냈다. 이들은 한국 작가들과 미술시장을 다룬 기사를 쏟아냈다. 세계 미술계 명사들도 한국 미술을 ‘열공’하기 시작했다. 여러 예술가와 단체를 후원하는 BMW의 토마스 기르스트 문화예술 협력 부문 총괄대표는 “한국 작가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며 “한국 예술가와 협업해 BMW 아트카를 만드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의 구매력도 입증됐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국내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많은 화랑이 ‘작품을 더 많이 갖고 올 걸 그랬다’며 후회하더라. 올해 한국 시장의 열기를 체감했으니 내년엔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업체가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국 화랑이 프리즈서울에서 PDF 인쇄물로 작품을 판매하는 모습.
한 외국 화랑이 프리즈서울에서 PDF 인쇄물로 작품을 판매하는 모습.

(3) 저력 보여준 KIAF

KIAF도 토종 아트페어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가나아트는 김구림의 4억원대 대작을, 선화랑은 곽훈의 1억2000만원대 작품 ‘할라잇’을 첫날 판매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강서경·하종현 등의 작품이, 조현화랑에서는 김종학의 소품들이 새 주인을 맞았다.

20~30대 젊은 컬렉터 사이에선 ‘관람은 (값비싼 작품이 많은) 프리즈에서, 컬렉팅은 (구매 가능한 가격대 작품이 내걸린) KIAF에서’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 덕분에 500만~1000만원대의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일찌감치 ‘완판’됐다. 작품 구매자 목록에는 외국인 이름도 여럿 있었다.

(4) 얌체 상술, 미숙한 운영은 오점

프리즈에 참가한 일부 해외 화랑은 작품값을 더 받으려는 심산으로 상도의에 어긋난 상술을 보여줘 비난받았다. 한 미술품 딜러는 “한 해외 화랑에서 작품을 구매하기로 했는데 입금 직전에 가격을 올려 부르더라”며 “다른 구매자가 나오자 사실상 경매에 부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컬렉터들에게 실물 작품이 아니라 PDF 사진만 보여준 다음 구매 여부를 묻는 ‘PDF 장사’ 행태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지난 7월 아트바젤에서 안 팔린 물건들이 떨이로 나온 것 같다”는 말도 컬렉터 사이에서 나왔다. 첫날 VIP 입장이 지연되고 입장권 바코드에 오류가 나는 등 프리즈 측의 운영 미숙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 배포 자료에 번역 오류를 내는 등 기초적인 실수도 적지 않았다.

(5) 한국 미술시장, 자생력 갖춰야

이번 행사에 대해 국내 미술계에선 “절반의 성공”(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이란 평가가 많았다.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서울로 끌어오긴 했지만 해외 미술계에 비해 허약한 한국 미술시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이유에서다. 김윤섭 대표는 “한국 미술계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프리즈는 해외에 돈만 퍼주는 행사가 될 수 있다”며 “프리즈에 쏠린 컬렉터들의 관심과 기업 후원을 KIAF로 돌릴 수 있도록 실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아트페어 하나가 ‘대박’이 났다고 서울이 미술 수도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한국 작가를 글로벌 스타로 키울 수 있는 역량과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다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국내 화랑이 더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국내 미술계는 이번 행사를 ‘충격 요법’ 삼아 내실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성수영/김보라/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