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선진국들, 90년대부터 지속적 공적연금 개혁으로 재정 안정 달성
"역사 짧은 국민연금, 연금급여 인하보다 보험료 인상 방향 개혁 바람직"
[이슈 In] 국민연금 개혁한다는데…선진 외국은 어떻게 했나
정부가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5차 재정 계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다른 연금 선진국들이 어떻게 연금 개혁을 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를 점검하고자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 계산을 한다.

2018년 제4차 재정 추계결과를 보면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유례없는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로 연금재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인구구조가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현행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연금 구조를 유지할 경우 이번 5차 재정 계산에서는 4차 때보다 기금소진 시기는 더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연금 개혁이 시급한 까닭이다.

하지만 연금 개혁은 인기가 없다.

보험료가 늘거나 연금수령액이 줄고 연금수령 시기가 늦춰지는 등 국민 부담은 커지고 혜택은 축소하는 쪽으로 개혁작업이 이뤄지기에 국민의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정치권이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때도 2차(2008년), 3차(2013년), 4차(2018년) 재정 계산을 하고서도 제대로 연금 개혁에 손조차 대지 못했다.

연금 문제가 워낙 '뜨거운 감자'이다 보니 외국에서도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과 혼선이 빚어졌고, 국민 저항에 심지어 권력이 교체되는 일도 적잖게 벌어졌다.

그러나 몇몇 연금 선진국에서는 극심한 진통을 겪으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적연금의 재정 지속 가능성을 달성해 개혁 작업을 앞둔 국민연금에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 방안 연구'(유호선·유현경·손현섭) 보고서를 보면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 선진국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처지처럼 심화하는 저출산·고령화 및 경기침체의 상황에서 1990년대부터 공적연금을 지속해서 개혁해 재정 안정화를 이뤄냈다.

◇ 독일, 정부 보조금·세제 지원하는 개인연금 도입해 다층노후소득보장체제 구축
1889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독일이다.

당시 평균수명은 47세, 연금수급 개시 연령은 65세였기에 연금재정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기대수명이 꾸준히 늘어 2020년 현재 83세에 달하지만, 출산율은 1.57명에 머물면서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연금 개혁에 들어갔다.

독일은 1989년에서 2017년 사이 11차례나 연금법을 고쳐가며 점진적으로 공적연금을 개혁했다.

[이슈 In] 국민연금 개혁한다는데…선진 외국은 어떻게 했나
그 주요내용은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낮춰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그 대신 이를 보완하고자 비록 사적연금(개인연금) 형태이지만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하고 세금공제를 해주면서 원금을 보장해주는 '리스터 연금'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 노후소득보장체제를 단층의 공적연금 중심에서 다층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전환했다.

리스터 연금제도는 은퇴자 증가, 노동인구 급감 등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은 독일이 공적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2001년 시행한 제도로 명칭은 당시 노동부 장관의 성(姓)이었던 '리스터'에서 따왔다.

기본적으로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매기지만 저소득층은 정부가 정액으로 보조금을 주고, 자녀가 있으면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소득 재분배와 출산 유인 효과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2004년 공적연금 개혁 때는 자동조정 장치를 도입, 인구 및 노동시장 변수를 반영해 급여 수준을 자동으로 하향 조정하도록 했다.

또 지속해서 연금수급 연령을 높이고 있다.

◇ 한 번의 급진적 구조개혁으로 재정안정 도모한 스웨덴
스웨덴은 전체 노인 대상의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이중 공적연금 체제로 매우 관대한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저출산·고령화의 파고를 북유럽 복지선진국인 스웨덴도 피해 가지 못했다.

여기에다 연금제도 자체의 비효율성까지 겹치면서 스웨덴은 1999년 기초-소득비례연금의 이중 체제 공적연금 구조를 부과 방식의 명목 확정기여형(Income Pension) 연금과 완전적립방식의 확정기여형 연금(Premium Pension) 구조로 전면 개편했다.

[이슈 In] 국민연금 개혁한다는데…선진 외국은 어떻게 했나
명목 확정기여 방식의 연금은 개인이 부담한 보험료에 일정 수준의 이자를 추가한 금액만큼 연금으로 받아 가는 제도로 연금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아주 효과가 크다.

여기에다 스웨덴은 공적연금에 자동조정 장치까지 가미해 인구학적 요소를 반영하는 식으로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했고, 연금수급 연령도 상향 조정했다.

이렇게 단 한 번의 급진적 구조개혁으로 스웨덴은 공적연금의 재정안정을 이뤘다.

스웨덴은 1999년 개혁으로 공적연금 보험료를 18.5%로 고정한 이후 현재는 더는 보험료율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자동조정 장치로 급여 수준을 인하하는 방법으로 연금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

스웨덴은 이처럼 공적연금을 대상으로 매우 강력한 재정 안정화 개혁을 하면서 기업연금은 유지 혹은 강화했다.

스웨덴의 기업연금은 근로자 대다수가 가입하는 형태로 노후소득보장제도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일본, 보험료 인상·급여수준 하향·수급연령 상향 등 모든 안정화 조치 단행
일본은 1990년대를 전후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비정규 고용 증가로 인한 고용기반의 약화,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가족 형태의 변화, 경제성장의 침체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주는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특히 저출산에다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보장 관련 비용이 매년 1조엔 이상 증가해 연금제도를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전반을 정비해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일본 역시 1985년부터 2012년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연금법을 바꿔가면서 지속해서 공적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동원 가능한 한 거의 모든 재정 안정화 방안을 시행했다.

주요 개혁내용을 보면 보험료 수준의 경우 2004년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2017년까지 18.3%로 인상했고, 이후 더는 보험료율은 올리지 않고 고정했다.

급여 수준은 1985년과 2000년 연금개혁에서 각각 인하한 후, 2004년 개혁 때 자동조정 장치를 도입해 인구 및 경제 상황 변수를 반영해 자동으로 하향 조정되게 했다.

연금수급 연령은 1994년과 2000년 개혁 때 각각 연금 부분별로 60세에서 65세로 올렸는데, 재정 안정화 방안의 하나로 추가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일본은 공적연금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기반을 확대하고 국고 부담을 강화해 수입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재정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이슈 In] 국민연금 개혁한다는데…선진 외국은 어떻게 했나
정리하면 이들 세 국가 모두 급여 수준 하향 및 보험료율 상향 등 가능한 한 최대의 재정 안정화 개혁을 한 후, 최근에는 연금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추가적인 재정안정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유호선 연구위원은 "이들 세 국가는 이미 공적연금이 성숙해 급여 수준이 상당히 높은 상태였기에 급여 수준 감액, 보험료율 조정 등의 개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국민연금의 경우 1988년 도입돼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차 국민연금 개혁 때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대폭 감액했기에 급여 수준 인하보다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해 수입을 확대하는 쪽으로 개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슈 In] 국민연금 개혁한다는데…선진 외국은 어떻게 했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