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남의연애'·'메리퀴어' 기획 임창혁 매니저 인터뷰
"영화·드라마로만 소비할 게 아니라 현실 이야기 공론화 하고 싶어"
"퀴어 연애예능, 시청 타깃은 전 국민…관심 두는 계기 되길"
"퀴어들 보라고 만든 콘텐츠 아니에요.

시청 타깃은 전 국민이죠."
웨이브는 지난달 동성에게 끌리는 남자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며 연인을 찾는 예능 '남의연애'와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향한 성(性) 소수자 커플들의 도전기를 담은 커밍아웃 로맨스 예능 '메리퀴어'를 선보였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왔지만, 성 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은 없었다.

성 다양성에 기반한 두 프로그램을 기획한 임창혁 웨이브 매니저를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웨이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초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 논의를 하던 시기에 BL(남성 간의 연애를 다룬 장르) 드라마들이 화제가 되고 있었어요.

이 친구들(퀴어)에 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것들 때문에 소외당하거나 불편을 겪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임창혁 매니저는 "영화나 드라마는 꾸며진 이야기다 보니 좀 더 극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데 사실에 기반한 프로그램이 나와야 공론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트랜스젠더와 양성애자 커플이 출연하는 '메리 퀴어'는 출연자들이 생활 곳곳에서 겪는 편견과 차별을 보여준다.

게이인 보성-민준 커플은 혼인신고를 하려 하지만 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했을 뿐 이후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레즈비언인 가람-승은 커플은 웨딩촬영을 상담하려고 업체에 전화를 걸지만 성 소수자 커플의 촬영은 맡지 않는다는 냉랭한 답변을 듣는다.

"퀴어 연애예능, 시청 타깃은 전 국민…관심 두는 계기 되길"
FTM 트렌스젠더인 지해와 양성애자인 민주 커플은 들뜬 마음으로 수영장을 향하지만, 겉모습은 남자여도 법적으로는 아직 여자인 지해가 남녀 탈의실 중 어디를 사용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해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임 매니저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점은 촬영 장소를 섭외하는 일이었다"며 "출연자가 잠깐 편의점에 가는 모습을 담으려고 해도 점주나 직원에게 어떤 프로그램인지를 설명하면 촬영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방송에는 모자이크 처리나 영상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장소뿐만이 아니다.

'남의연애'는 진행을 맡겠다는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실패해 결국 MC 없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다행히 MC의 개입 없이 출연자들의 모습만 보여주는 연출이 프로그램 취지에 더 잘 맞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보 전달 성격이 있는 '메리퀴어'는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과 신동엽, 하니가 MC를 맡았다.

홍석천은 흔쾌히 출연을 결정하면서도 "이 프로그램 못 할걸?"이라며 한국에서 성 소수자 예능이 나오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 홍석천은 방송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렇다고 '메리퀴어'나 '남의연애'가 무작정 출연자들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임 매니저는 "성 다양성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어떤 반응이라도 보였으면 하는 게 기획 의도였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적으로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오해나 왜곡을 피하고자 자극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했다"면서 "'남의연애'는 다른 연애 예능과 비교해 스킨십이나 노출, 출연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전 연인 소환 등의 장치가 전혀 없어 밋밋한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의 반향을 고려해 기획부터 편집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워낙 민감한 소재다 보니 부정적인 반응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청소년기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보고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불편한 시선, 종교적인 이유의 반대가 이어졌다.

임 매니저는 "출연자들을 응원하든 부정하든 그건 전적으로 시청자들의 결정"이라며 "성 소수자를 반대하던 사람이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오히려 찬성하던 분이 반대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 다양성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어렴풋하게라도 이 이슈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성 소수자를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더 현명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퀴어 연애예능, 시청 타깃은 전 국민…관심 두는 계기 되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