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슬람, 평화의 종교?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의 인사말 ‘앗살라무 알라이쿰’은 ‘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이라고 주로 번역된다. 수단 국립 옴두르만대에서 쿠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은 지난해 한 기고문에서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고 지적했다. ‘앗살라무’는 아랍어 ‘살람(salm)’ 앞에 정관사 알(al-)을 붙인 것인데, 아랍어 사전에서 살람을 찾아보면 ‘안전, 평화, 화해, 찬사, 알라의 이름들 중 하나, (해로움을) 당하지 않음, 무슬림들 사이의 인사말’ 등의 여러 뜻이 있다.

이 인사말이 아랍 무슬림 사이에 쓰이는 뜻은 대략 네 가지인데 “당신이 나로부터 해로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게 대표적이다. 이동하며 살아야 했던 아랍 유목민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먼저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해치지 않겠다”며 건네는 첫인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평화보다는 안전에 관련한 개념이며 쿠란에 나오는 살람이나 앗살람에는 평화란 뜻이 없다고 공 소장은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건 지나치게 미화된 이야기일까. 서로가 상대를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 것이 평화의 전제라는 점에서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슬람 테러 범죄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성전(聖戰·지하드)을 빙자한 이슬람 과격단체와 근본주의자들의 납치와 폭력, 살상으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무슬림마저 테러분자로 의심받는 게 현실이다.

1988년 출간한 소설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온 인도계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75)가 지난 12일 미국 뉴욕주에서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다 레바논계 미국인 하디 마타르(24)에게 습격당해 충격을 주고 있다. ‘노력하는 것, 애쓰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등의 사전적 의미가 있는 지하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첫째는 신앙 실천을 위한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둘째는 자신의 재산으로 자선을 베풀거나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셋째는 몸으로 하는 지하드인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직접 참여하는 투쟁이다. 일부 과격분자의 소행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자행한 폭력과 테러가 첫째와 둘째 범주의 지하드를 무색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