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관악구 반지하 집 대부분 물막이판도 없어…방범창도 낡아 범죄 취약
"열심히 살았지만 뜻대로 안된 사람들…반지하 수요 어떻게 흡수할지 대책 중요"
가난한 동네에 더 가난한 이들 사는 데…"나가라면 어쩌나"
"이제는 반지하에 살지 못 하게 한다는데,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
서울 은평구 응암동 4층짜리 다세대주택 반지하 집에 사는 80대 안모 씨는 11일 "이 동네는 원래도 가난한 동네지만, 더 없이 사는 사람들이 반지하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들이 찾아간 은평구와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 주민들은 집이 침수 피해를 보기 쉽고 범죄에도 쉽게 노출돼 늘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전날 서울시가 내놓은 '지하·반지하 주택 불허' 계획을 듣고는 유일한 터전인 반지하 집에서마저 내쫓길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안씨는 "응암동 반지하에 사는 사람 중에 노인이 많은데 방범창이 없어서 위험하다"며 "그래서 창문 앞에 큼지막한 화분을 5개 뒀다"고 했다.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은 인근의 빌라는 방범창이 대부분 낡았고 얇은 스테인리스로 격자식으로 박아놔 조금만 힘을 줘도 떨어질 듯했다.

한 집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나무로 된 발을 쳐놓기도 했다.

창문 앞에 물막이판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설치됐다 하더라도 높이가 창문의 절반도 되지 않는 50㎝가량이었다.

인근 역촌동 주택가에서도 반지하에 물막이판이 있는 경우는 한 집 건너 한 집 정도에 그쳤다.

근처에 거주하는 박모(31) 씨는 "창문에 물막이판이 있었지만, 지하라 원래도 꿉꿉하고 해가 들어오지 않는 데다 더 어둡고 습해져서 떼버렸다"며 "이번 침수 피해를 보고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고 말했다.

현재 응암동·역촌동의 반지하 집 평균 시세는 보증금 500만∼1천만원에 월세 30만∼50만원이다.

응암동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화장실이 (앉았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 차이에 따라 시세가 달라진다"며 "보통 수요자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번 중부 집중호우로 수해를 많이 입은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은 상황이 더욱 열악했다.

이날 신림동에서 한 부동산중개인 소개로 찾아간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원룸 반지하 집은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집안은 토굴처럼 어둡고 빛이 잘 들지도 않았다.

화장실은 성인 남성이 서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였고, 창문 밖에 곧바로 벽이 막고 있어서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부동산중개인은 집을 보여주면서 "이 집은 우중충해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며 "주로 중국인이나 건설 노동자, 독거노인이 찾는 편"이라고 했다.

이어 "얼마 전 폭우 피해로 이 동네 반지하 집이 젖었다는 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봉천동의 한 반지하 집은 물막이판이 없는 데다 창문 앞에 7개 정도 되는 전선이 칭칭 감겨 있어 침수가 발생하면 위험해 보였다.

창문 안쪽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유리창 아래에서부터 위쪽까지 습기로 젖어있는 자국이 어둡게 배어있었다.

가난한 동네에 더 가난한 이들 사는 데…"나가라면 어쩌나"
몇 걸음 옆의 또다른 반지하 집은 창문 앞에 물막이판 대신 유리를 대놓고 있었다.

도로가 물에 잠기고 수압으로 유리가 깨지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어 아슬아슬해 보였다.

신림동 반지하 집 평균 시세는 전용면적 4평 원룸 기준으로 보증금 500만원에서 월세 30만원 선이다.

인근의 대학동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 더 저렴한 편이다.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열심히 인생을 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분들, 실직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분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고 전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00가구 중 6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윤은주 간사는 "반지하가 주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방향은 맞지만, 지금의 반지하 수요를 어떻게 흡수할지에 대한 대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