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 팜 美 CFTC 위원 "암호화폐 법제화 이전에라도 규제 가이드라인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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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암호화폐 규제 관할 유력한 CFTC
캐롤라인 팜 상임위원 인터뷰
"민관 합동 자문위원회 구성해
법 통과 전에라도 규제 시도할 것"
"CFTC, 네거티브식 '원칙 기반' 규제
SEC보다 효율적·친화적 규제 가능"
캐롤라인 팜 상임위원 인터뷰
"민관 합동 자문위원회 구성해
법 통과 전에라도 규제 시도할 것"
"CFTC, 네거티브식 '원칙 기반' 규제
SEC보다 효율적·친화적 규제 가능"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법이 올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 해도 규제 당국자로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상품거래위원회(CFTC)에서 민관 합동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캐롤라인 팜 미국 CFTC 상임위원(사진)은 8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규칙이 불분명하다면 시장과 소통해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감독당국의 역할"이라며 "업계와 민관 전문가, 미국 안팎 규제당국 등의 의견을 모아 일종의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규율할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규제도 하기 어렵다는 국내 금융당국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대목이다.
7~14일 한국에서 열리는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2'의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팜 위원을 만나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방향은 이제 디지털자산 관련 기본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팜 위원은 오는 11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및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금융감독원과 국회에서 만나 암호화폐 관련 글로벌 규제를 논의한다.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관련 논의는 국내에서도 업계와 투자자 모두에게 뜨거운 관심사다. 국경을 넘나드는 암호화폐 거래 특성상 시장이 가장 방대한 미국이 암호화폐 규제의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글로벌 규제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 기관이 어떻게 정해지는지가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암호화폐 업계는 금융사 수준의 등록 요건과 엄격한 공시 의무 등을 요구하는 SEC보다는 CFTC의 관할 아래 들어가는 것을 선호해왔다.
팜 위원은 이런 CFTC의 상임위원 중에서도 암호화폐와 관련해 가장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이다. 올 4월 다섯 명의 CFTC 위원 중 마지막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합류한 그는 직전까지 씨티그룹에서 법률 고문, 자본시장 규제 및 파생상품 전략 부문 전무이사를 지냈다.
팜 위원은 친(親) 암호화폐 인사로 최근 떠오르고 있다. 최근 SEC가 알트코인(비트코인이 아닌 암호화폐) 9종을 증권으로 규정하고 이 코인을 선행매매에 악용한 코인베이스 직원을 증권법 위반 사항인 내부자 거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팜 위원이 가장 먼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성명을 통해 "SEC가 소송을 통해 유틸리티·거버넌스 토큰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수의 암호화폐를 증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제적 집행을 통한 규제'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며 "규제의 명확성은 투명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규제의 방향은 시장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SEC와 2년 가까이 소송전 중인 리플의 최고경영자(CEO) 브래드 갈링하우스는 팜 위원의 성명을 리트윗하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팜 위원은 지난 5월 암호화폐 친화적 행보로 업계에서 ‘크립토 맘’이라는 별칭을 얻은 헤스터 퍼스 SEC 위원과 함께 논평을 내고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와 투자자, 전문가와 규제당국이 모두 모여 공개적으로 회의를 열고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제 방향을 함께 논의하자"고 촉구했다. 제2의 '크립토 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팜 위원은 "암호화폐처럼 경제적으로 중요성이 큰 사안에 대해선 당국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명확한 규제를 수립해야 한다"며 "소비자와 시장을 보호하고, 현행 규제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기 위해 CFTC 자체적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규제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 보호 없는 급격한 혁신도 문제지만, 소비자 보호에 너무 치중해서 아무런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문제"라며 "'산업 혁신'과 '소비자 보호' 양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팜 위원과의 일문일답.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경우 상품(commodity)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점이다. 양파와 영화 티켓을 제외한 모든 게 상품에 해당한다고 법에 돼 있을 정도다. 미국에선 증권 또한 사실은 상품에 해당한다. 다만 그중에서도 무엇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분류하고 증권 시장을 감독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SEC에 있을 뿐이다. 그 외 모든 원자재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권한은 CFTC에 있다. 따라서 다양한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 역시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그 규제 권한은 자연스럽게 CFTC가 갖게 된다. 이 경우 암호화폐거래소나 브로커, 딜러는 모두 CFTC에 등록하고, 최소한의 자본금 요건과 리스크 관리 의무 등을 충족해야 한다."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해당 암호화폐 발행사와 거래소 등은 SEC에 등록하고 코인 발행, 공시 등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제까지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신고·등록한 경우가 없는 만큼 암호화폐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현재 상장된 수많은 코인들이 상장폐지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SE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암호화폐는 모두 증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CFTC는 코인 발행, 자금 모집 과정 등에는 관여하지 않고 사기 및 시세 조종 방지, 리스크 관리 등 거래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를 위주로 운영한다. 이 때문에 업계로서는 규제가 덜 까다로운 CFTC를 선호한다. CFTC는 2015년 일찌감치 '비트코인은 상품'이라고 규정하고 감독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규제당국도 달라진다는 얘기인데. CFTC와 SEC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조직이 만들어진 목표부터가 다르다. CFTC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책임 있는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CFTC로서는 시장 경쟁과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만큼 중요하다. 반면 SEC의 제일 사명은 '투자자 보호'다. 혁신 장려는 SEC의 책무가 아니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미국에서 어느 규제기관이 암호화폐 시장을 관할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장 중요한 암호화폐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이번 코인베이스 사건에서 보듯 SEC는 소송과 법원의 판례를 통해 그 기준을 정하려 하고 있다. 보통법 국가인 미국에선 법원의 판례가 법처럼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다. SEC가 이번에 문제가 된 암호화폐 9종의 증권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한 '하위 테스트'도 그렇게 법원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적 법집행을 통하는 것보단,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와 공청회 등을 거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중과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지 않으면 규제의 명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걸려도 그렇게 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CFTC, SEC 등 관련 규제당국이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크립토 맘'으로 유명한 SEC의 퍼스 위원과 공동 논평을 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논평에서 우리는 CFTC와 SEC가 합동으로 공개 회의를 열고 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시장의 현황과 리스크 요인, 그리고 어떻게 암호화폐를 책임 있게 규율할 것인지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회의에는 암호화폐 이용자와 투자자, 소비자단체, 업계, 전통 금융시장 참여자, 학계, 다른 규제당국 등을 모두 참여시키고 내용은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2010년 알고리즘 매매로 인한 다우존스 지수 '순간폭락(flash crash)' 당시에도 두 기관이 이런 공개 회의를 함께 진행, 참여자들의 제안에 따라 규제를 도입한 경험이 있다." "CFTC 규제는 '원칙 기반' '자율 중시'
▷CFTC가 암호화폐 시장 규제를 총괄하게 되면 업계와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CFTC의 규제는 기본적으로 '원칙 기반'이다. 가령 '시세 조종 금지'라는 원칙만 준수한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CFTC가 일일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업체가 자율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원칙 기반의 자율 규제 시스템인 셈이다. 이런 규제의 틀은 기술 중립적이고 암호화폐 산업처럼 급변하는 섹터를 규율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다. 더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선 SEC보다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CFTC는 SEC와 마찬가지로 소비자 보호를 중요한 책무로 지고 있다. 특히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가 발생하기 때문에 CFTC는 해외에도 관할권을 갖고 있다. 실제 CFTC는 이미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50건 이상의 암호화폐 사기, 허위 사실 표기 등의 사건에 제재를 가해왔다. 작년에는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지급준비금을 허위 공시한 혐의에 대해 4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비트코인 폰지 사기를 벌인 회사 미러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CFTC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CFTC가 이미 보유한 규제 권한을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CFTC가 암호화폐 현물 시장에서도 등록·허가·소비자보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관할권을 명확히 부여하는 법안이 3개 발의돼 있다. 하지만 사실 CFTC는 지금도 외환 마진거래와 레버리지 상품 거래에 한해선 현물시장에서도 관할권을 갖고 있다. 이 권한을 암호화폐 시장에도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법이 통과될 때까지 규제 공백 상태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 상하원은 CFTC에 암호화폐 규제 관련 주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3개 발의했다. 특히 지난 6월 미국 민주당·공화당 상원의원이 함께 발의한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은 암호화폐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의 틀을 만들려는 미국 내 최초의 초당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리고 SEC가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한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해 CFTC가 관할하도록 했다. 암호화폐거래소 등록·허가도 CFTC가 담당하게 된다.
다만 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암호화폐 현물 거래에 대해서는 규제 권한이나 업체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인지 모호한 상태다. 미국에서는 올해 안에 법 통과는 요원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법 통과 이전이라도 CFTC의 기존 규제 수단을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 활용해야 한다고 팜 위원은 주장한다.
▷어떻게 할 수 있나.
"CFTC 내 민관 합동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규제 솔루션을 만들어보려 한다. 내가 주관하는 CFTC '글로벌 시장 자문위원회' 산하에 '디지털 자산시장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민간 부문에선 업계 리더, 전문가, 소비자 등 모든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를, 공공 부문에선 미국은 물론 해외 규제당국까지 모두 모여 최적의 규제 방안을 만들기 위해 공개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적합한 규제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정책 제안, 규칙 제정, 실제 집행까지도 시도할 수 있다. CFTC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통과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입법 이전에 규제를 시도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는 없나.
"미국에서도 '의회가 일을 하기 전에 우리(규제당국)가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정답은 아닐 수는 있지만, 암호화폐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최소한 토론을 해볼 아이디어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암호화폐 규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혁신과 소비자 보호 간 균형 잡힌 접근이다. 소비자 보호가 부실한 급격한 혁신도 문제가 있지만, 소비자 보호에 너무 치중해서 아무런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
7~14일 한국에서 열리는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 2022'의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팜 위원을 만나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방향은 이제 디지털자산 관련 기본법 제정 논의를 시작하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팜 위원은 오는 11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및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금융감독원과 국회에서 만나 암호화폐 관련 글로벌 규제를 논의한다.
캐롤라인 팜 CFTC 위원은 누구
미국 CFTC는 암호화폐 규제 동향에 관심이 높은 국내 코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만큼 익숙해진 이름이다. 석유·금·곡물 같은 원자재와 선물·옵션·스왑 등 파생상품 시장을 감독하는 미국 연방 기구인 CFTC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함께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를 총괄할 감독 기구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미국의 암호화폐 규제 관련 논의는 국내에서도 업계와 투자자 모두에게 뜨거운 관심사다. 국경을 넘나드는 암호화폐 거래 특성상 시장이 가장 방대한 미국이 암호화폐 규제의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글로벌 규제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 기관이 어떻게 정해지는지가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암호화폐 업계는 금융사 수준의 등록 요건과 엄격한 공시 의무 등을 요구하는 SEC보다는 CFTC의 관할 아래 들어가는 것을 선호해왔다.
팜 위원은 이런 CFTC의 상임위원 중에서도 암호화폐와 관련해 가장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이다. 올 4월 다섯 명의 CFTC 위원 중 마지막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합류한 그는 직전까지 씨티그룹에서 법률 고문, 자본시장 규제 및 파생상품 전략 부문 전무이사를 지냈다.
팜 위원은 친(親) 암호화폐 인사로 최근 떠오르고 있다. 최근 SEC가 알트코인(비트코인이 아닌 암호화폐) 9종을 증권으로 규정하고 이 코인을 선행매매에 악용한 코인베이스 직원을 증권법 위반 사항인 내부자 거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팜 위원이 가장 먼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성명을 통해 "SEC가 소송을 통해 유틸리티·거버넌스 토큰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수의 암호화폐를 증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제적 집행을 통한 규제'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며 "규제의 명확성은 투명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규제의 방향은 시장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SEC와 2년 가까이 소송전 중인 리플의 최고경영자(CEO) 브래드 갈링하우스는 팜 위원의 성명을 리트윗하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팜 위원은 지난 5월 암호화폐 친화적 행보로 업계에서 ‘크립토 맘’이라는 별칭을 얻은 헤스터 퍼스 SEC 위원과 함께 논평을 내고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와 투자자, 전문가와 규제당국이 모두 모여 공개적으로 회의를 열고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제 방향을 함께 논의하자"고 촉구했다. 제2의 '크립토 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팜 위원은 "암호화폐처럼 경제적으로 중요성이 큰 사안에 대해선 당국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명확한 규제를 수립해야 한다"며 "소비자와 시장을 보호하고, 현행 규제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기 위해 CFTC 자체적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규제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 보호 없는 급격한 혁신도 문제지만, 소비자 보호에 너무 치중해서 아무런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문제"라며 "'산업 혁신'과 '소비자 보호' 양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팜 위원과의 일문일답.
"시장과 충분히 소통하며 규제해야"
▷암호화폐 규제를 방안을 논의할 때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이 무엇인지'다. 암호화폐가 증권인지 상품인지가 왜 중요한 것인가."우선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경우 상품(commodity)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점이다. 양파와 영화 티켓을 제외한 모든 게 상품에 해당한다고 법에 돼 있을 정도다. 미국에선 증권 또한 사실은 상품에 해당한다. 다만 그중에서도 무엇이 증권에 해당하는지 분류하고 증권 시장을 감독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SEC에 있을 뿐이다. 그 외 모든 원자재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권한은 CFTC에 있다. 따라서 다양한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 역시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그 규제 권한은 자연스럽게 CFTC가 갖게 된다. 이 경우 암호화폐거래소나 브로커, 딜러는 모두 CFTC에 등록하고, 최소한의 자본금 요건과 리스크 관리 의무 등을 충족해야 한다."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해당 암호화폐 발행사와 거래소 등은 SEC에 등록하고 코인 발행, 공시 등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이제까지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신고·등록한 경우가 없는 만큼 암호화폐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현재 상장된 수많은 코인들이 상장폐지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SE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암호화폐는 모두 증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CFTC는 코인 발행, 자금 모집 과정 등에는 관여하지 않고 사기 및 시세 조종 방지, 리스크 관리 등 거래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를 위주로 운영한다. 이 때문에 업계로서는 규제가 덜 까다로운 CFTC를 선호한다. CFTC는 2015년 일찌감치 '비트코인은 상품'이라고 규정하고 감독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암호화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규제당국도 달라진다는 얘기인데. CFTC와 SEC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조직이 만들어진 목표부터가 다르다. CFTC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책임 있는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CFTC로서는 시장 경쟁과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만큼 중요하다. 반면 SEC의 제일 사명은 '투자자 보호'다. 혁신 장려는 SEC의 책무가 아니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미국에서 어느 규제기관이 암호화폐 시장을 관할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장 중요한 암호화폐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이번 코인베이스 사건에서 보듯 SEC는 소송과 법원의 판례를 통해 그 기준을 정하려 하고 있다. 보통법 국가인 미국에선 법원의 판례가 법처럼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다. SEC가 이번에 문제가 된 암호화폐 9종의 증권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한 '하위 테스트'도 그렇게 법원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적 법집행을 통하는 것보단,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와 공청회 등을 거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중과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지 않으면 규제의 명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걸려도 그렇게 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CFTC, SEC 등 관련 규제당국이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크립토 맘'으로 유명한 SEC의 퍼스 위원과 공동 논평을 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논평에서 우리는 CFTC와 SEC가 합동으로 공개 회의를 열고 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시장의 현황과 리스크 요인, 그리고 어떻게 암호화폐를 책임 있게 규율할 것인지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회의에는 암호화폐 이용자와 투자자, 소비자단체, 업계, 전통 금융시장 참여자, 학계, 다른 규제당국 등을 모두 참여시키고 내용은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2010년 알고리즘 매매로 인한 다우존스 지수 '순간폭락(flash crash)' 당시에도 두 기관이 이런 공개 회의를 함께 진행, 참여자들의 제안에 따라 규제를 도입한 경험이 있다."
"CFTC 규제는 '원칙 기반' '자율 중시'
SEC보다 유연하고 효율적"
▷CFTC가 암호화폐 시장 규제를 총괄하게 되면 업계와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CFTC의 규제는 기본적으로 '원칙 기반'이다. 가령 '시세 조종 금지'라는 원칙만 준수한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은 CFTC가 일일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업체가 자율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원칙 기반의 자율 규제 시스템인 셈이다. 이런 규제의 틀은 기술 중립적이고 암호화폐 산업처럼 급변하는 섹터를 규율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다. 더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선 SEC보다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CFTC는 SEC와 마찬가지로 소비자 보호를 중요한 책무로 지고 있다. 특히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가 발생하기 때문에 CFTC는 해외에도 관할권을 갖고 있다. 실제 CFTC는 이미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50건 이상의 암호화폐 사기, 허위 사실 표기 등의 사건에 제재를 가해왔다. 작년에는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지급준비금을 허위 공시한 혐의에 대해 4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비트코인 폰지 사기를 벌인 회사 미러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CFTC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CFTC가 이미 보유한 규제 권한을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CFTC가 암호화폐 현물 시장에서도 등록·허가·소비자보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관할권을 명확히 부여하는 법안이 3개 발의돼 있다. 하지만 사실 CFTC는 지금도 외환 마진거래와 레버리지 상품 거래에 한해선 현물시장에서도 관할권을 갖고 있다. 이 권한을 암호화폐 시장에도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법이 통과될 때까지 규제 공백 상태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 상하원은 CFTC에 암호화폐 규제 관련 주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3개 발의했다. 특히 지난 6월 미국 민주당·공화당 상원의원이 함께 발의한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은 암호화폐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의 틀을 만들려는 미국 내 최초의 초당적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그리고 SEC가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한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해 CFTC가 관할하도록 했다. 암호화폐거래소 등록·허가도 CFTC가 담당하게 된다.
다만 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암호화폐 현물 거래에 대해서는 규제 권한이나 업체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인지 모호한 상태다. 미국에서는 올해 안에 법 통과는 요원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법 통과 이전이라도 CFTC의 기존 규제 수단을 암호화폐 시장 감독에 활용해야 한다고 팜 위원은 주장한다.
▷어떻게 할 수 있나.
"CFTC 내 민관 합동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규제 솔루션을 만들어보려 한다. 내가 주관하는 CFTC '글로벌 시장 자문위원회' 산하에 '디지털 자산시장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민간 부문에선 업계 리더, 전문가, 소비자 등 모든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를, 공공 부문에선 미국은 물론 해외 규제당국까지 모두 모여 최적의 규제 방안을 만들기 위해 공개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적합한 규제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정책 제안, 규칙 제정, 실제 집행까지도 시도할 수 있다. CFTC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시장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통과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입법 이전에 규제를 시도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는 없나.
"미국에서도 '의회가 일을 하기 전에 우리(규제당국)가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정답은 아닐 수는 있지만, 암호화폐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최소한 토론을 해볼 아이디어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암호화폐 규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혁신과 소비자 보호 간 균형 잡힌 접근이다. 소비자 보호가 부실한 급격한 혁신도 문제가 있지만, 소비자 보호에 너무 치중해서 아무런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