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총선 앞두고 첫 여성총리 유력한 멜로니 전략가 자처
이탈리아 3선 총리 베를루스코니, 이번엔 '킹메이커'로 변신
이탈리아에서 1994∼2011년 세 차례에 걸쳐 9년간 총리를 지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5)가 이제는 총리를 만들어내는 '킹메이커'로 변신한 모양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지난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일 메사제로'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한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 당수 조르자 멜로니(45)에 대해 "결단력과 용기를 갖춘 지도자"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멜로니를 지켜야 한다"며 "그러려면 멜로니를 지나치게 자주 (언론에) 노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9월 25일 이탈리아에서 조기 총선이 실시될 가운데 현재 우파 연합의 지지율은 약 45%에 달해 상·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진다.

우파 연합은 양대 극우당인 FdI과 동맹(Lega), 그리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주도하는 중도 우파 성향의 전진이탈리아(FI) 등 3당으로 이뤄져 있다.

이중 FdI의 지지율은 지난 1일 기준 24%로 우파 연합의 나머지 2개당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다.

우파 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세 정당 중 가장 지지도가 높은 Fdl의 멜로니 당수가 총리직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세 정당은 이미 지난달 27일 최다 득표를 한 당에서 총리 후보 추천 권한을 갖기로 합의하며 교통정리까지 끝냈다.

멜로니가 총리에 오르면 이탈리아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집권한 첫 극우 지도자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이탈리아 3선 총리 베를루스코니, 이번엔 '킹메이커'로 변신
멜로니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이유다.

그는 당수로 취임한 이래 반이민·난민 입장을 고수하면서 수시로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최근에는 발언 수위를 낮추며 외연 확장에 나섰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파시스트의 이념적 뿌리를 가진 것으로 의심받는 멜로니가 집권할 경우 이탈리아 정치가 급격하게 우경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멜로니를 지켜야 한다"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말은 '네오 파시스트'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멜로니가 설익은 정책이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지지율을 깎아 먹지 않도록 우파 연합 차원에서 멜로니의 메시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멜로니와의 차별화를 통해 '킹'에 도전하는 대신 멜로니를 총리로 만들어내는 전략가이자 '킹메이커'로 자신의 위치를 정한 셈이다.

'우파 연합'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은 '중도 좌파 연합'은 최근 중도 성향 정당 '아치오네'(Azione·이탈리아어로 행동이라는 뜻)가 탈퇴하는 등 결성 일주일도 안 돼 자중지란에 빠졌다.

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이탈리아 정계에서는 우파 연합의 총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중요한 건 우리까지 편을 가르지 않는 것"이라며 우파 연합의 결속을 강조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우파 연합의 총선 승리 시, 차기 총리 또는 상원의장에 도전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난 이 나라(이탈리아)를 거의 10년간 이끄는 특권을 누렸다"며 "전 세계에서 총리를 3차례 지낸 사람은 내가 유일한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건설업체와 미디어 기업을 거느린 이탈리아 최고의 재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1994년에서 2011년 사이에 3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미성년자와의 성 추문 의혹과 이탈리아 재정 위기 속에 2011년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올해 1월에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냈으나 좌파 진영의 지지를 얻지 못해 출마를 중도 포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