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고(高)물가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나빠지고 미국, 중국 등 주요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하반기 경기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면서 경기 전반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KDI는 7일 발표한 ‘8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 부진이 완화되며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지속했으나 고물가와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요인이 고조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KDI는 전망에 대해 “소비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고 주요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제조업 중심으로 경기 하방 요인이 확대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KDI는 당장의 경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봤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위축됐던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생산이 회복되면서 6월 전(全)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2.1% 늘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5.6%에서 76.5%로 높아졌고, 계절조정 실업률도 2.9%의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KDI가 ‘완만한 경기 회복세’란 표현을 쓴 배경이다.

하지만 미래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이후 빠졌던 경기 하방 위험에 대한 언급이 ‘고조’ ‘확대’ 등의 표현으로 되살아났다. KDI는 고물가에 따른 소비자 심리 하락, 글로벌 경기 둔화가 한국의 ‘경제 엔진’인 제조업 부진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3% 상승하며 1998년 11월(6.8%) 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7월 소비자심리지수는 86포인트로 전월(96.4포인트)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란 뜻이다.

재고율은 전월 114.3%에서 124.6%로 증가하는 등 생산 증가의 ‘질’도 좋지 않았다.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대(對)중국 수출이 줄어들고 미국 경제도 2분기 연속 역성장하는 등 대외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현재 경기 상황은 지난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미래 전망은 조금 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며 “고물가가 계속되고 미국과 중국 경제가 안 좋아지고 있으며 금리 인상도 시차를 두고 (경기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