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들·페퍼민트·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신간] 에리옌
▲ 에리옌 = 항타고드 오손보독 지음. 한유수 옮김.
중국 북동부 내몽골 출신 작가 항타고드 오손보독이 1990년대 말 중국 내몽골자치구의 국경도시 에리옌에서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영웅 서사 대신 소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청년 시인 숨베르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애인 아리오나를 따라 고비사막 중앙에 있는 국경도시 에리옌에 오지만, 그에게 에리옌은 파렴치한 거짓말과 속임수, 혼란으로 얼룩진 낯선 세상이다.

숨베르가 어렵게 구한 장사 밑천은 애인의 아버지가 탕진하고, 애인의 어머니는 숨베르 친구의 물건을 빼돌려 이득을 챙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숨베르는 애인의 집에서 쫓겨난다.

에리옌에 온 지 3년째인 철멍은 체육대학에 들어가 유명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천대받는 삼륜거꾼이다.

열심히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순수한 철멍도 이런 에리옌의 삶에 물들어간다.

오손보독은 에리옌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과 충돌에도 동족 간의 순수한 동경과 그리움, 정신적 유대감과 동질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찾는다.

에리옌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도시지만 순수성을 지키려는 인물들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문학과지성사. 539쪽. 2만원.
[신간] 에리옌
▲ 돌보는 사람들 = 샘 밀스 지음. 이승민 옮김.
영국 출신 작가 샘 밀스가 갑작스러운 신장암 발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간병인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의미를 알아가는 자전적 에세이다.

질환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삶을 훌륭하게 형상화한 작품에 수여하는 바벨리언 문학상 최종 후보작이다.

밀스는 간병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인 커플인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 스콧과 젤다 피츠제럴드의 관계와 연결해 정신질환자 간병을 설명한다.

조현병 환자였던 버지니아 울프의 보호자인 남편 레너드는 정신과 의사를 선택할 때 아내의 의견을 우선한다.

그러나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를 스위스 최고급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레너드는 버지니아 울프의 천재성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를 다루기 힘든 아이 취급한다.

밀스는 자기보다 앞서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의 간병인이었던 레너드와 스콧의 생애에 강하게 이끌린다.

레너드의 삶을 통해서는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고, 스콧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자신이 닮을까 봐 우려한다.

밀스는 아버지의 병증을 해독해보려고 정신질환 이론과 사회적 처우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 과정도 소개한다.

정은문고. 458쪽. 2만1천원.
[신간] 에리옌
▲ 페퍼민트 = 백온유 지음.
첫 장편소설 '유원'으로 2019년 창비청소년문학상, 2020년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백온유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살 시안과 해원이 6년 만에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안은 몇 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 매일 페퍼민트 차를 우린다.

6년 전 시안의 가족이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뒤 엄마는 회복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엄마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 간병 생활의 괴로움, 이 모든 상황이 지겹다고 생각했을 때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시안의 내면은 복잡하다.

시안은 어릴 때 가족 같았지만, 병을 옮기고 잠적한 해원을 다시 만난다.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의 건강이 회복됐다고 거짓말한다.

겉으론 웃으면서도 해원의 입사나 남자친구 고민을 들으며 같아질 수 없다는 걸 느낀다.

해원에게도 깊은 불안이 있다.

농담으로 던진 '병을 옮긴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흔한 이름인 '지원'으로 개명한 뒤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알까 봐 노심초사한다.

자신을 잘 아는 시안을 다시 만나며 감정이 요동친다.

창비. 268쪽. 1만4천원.
[신간] 에리옌
▲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 이주혜 지음.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 이주혜의 첫 소설집이다.

'오늘의 할 일', '아무도 없는 집' 등 이주혜가 6년간 써온 아홉 편의 단편이 담겼다.

소설집은 중년 여성이 한국 사회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분열, 분노와 절망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욱신거리는 삶만이 얻을 수 있는 위로와 연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표제작 '그 고양이의 이름을 길다'는 50대 여성 은정이 수술대에 누운 몸에서 유체이탈해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스무 살부터 '처녀 가장' 꼬리표가 붙은 가정사, 회사 동료 소희 언니와의 우정이 깨어지는 과정 등이 이어진다.

은정은 무언가 자꾸 잃어온 것 같은 삶이지만, 빈자리에도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깨닫는다.

창비. 304쪽. 1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