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한국인 A씨(20)는 영국 히스로국제공항에서 짐가방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환승 폴란드항공편으로 런던에 도착했지만, 그의 짐은 수하물 수취대에 없었다. 영국 런던에서 3일간 체류한 그는 결국 짐을 찾지 못하고 현지에서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면서 벨기에~프랑스~독일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여름휴가를 맞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에게 ‘공항 대란(짐 분실, 환승 항공편 결항 등)' 주의 경보가 발령됐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규제가 해제되고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공항에서는 인력 부족 등으로 짐 분실 사고와 항공기 결항 사태가 멈추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스로공항에 근무하는 급유 담당 근로자들은 이달 21~24일 파업에 돌입했다. 급유 공급회사는 10% 임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근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임금 동결과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더 높은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8~9월 런던발 항공권 발매를 일시 중단했다. 일부 해외 언론들은 유럽 항공사들의 줄파업과 코로나 사태로 떠났던 공항 인력 복귀가 늦어지면서 올가을까지 공항 대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지에서 못 찾은 짐, 한국에서 찾는다?
해외 공항 가운데 특히 영국의 히스로공항 위탁 수하물 처리가 최악이다. 하루에도 여객들의 수하물 수백여 점이 여객기 적재에 누락되거나 일시 분실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 프로골퍼 이재경(23) 선수가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히스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가 골프백이 분실된 사건도 그 일환이다.
히스로공항 측은 항공사에 항공권 판매를 제한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하루 공항 이용객을 10만 명 이하로 결정했다. 영국 교통부는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신규 직원에 대한 채용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수하물 대란은 계속되고 있다.
A씨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날 공항에 있는 수하물분실센터에 여객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었지만, 안내방송도 없었고 관련 직원도 현장에 없었다”며 “아무도 없는 분실물 신고센터에서 자신의 여행 가방 모양, 색깔, 이메일 주소를 용지에 적어놓고 나온 게 전부”라고 말했다.
폴란드항공사 관계자는 ”현지 공항의 인력 부족과 수화물 처리시스템의 노후화 등으로 일부 여객들의 짐이 수취대로 올라가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분실된 수하물을 확보해 여객이 묵고 있는 호텔로 전달하거나 한국 주소로 배달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승 항공편 결항으로 이틀 늦게 도착
수하물 분실과 항공기 지연 출발, 연착, 취소 등 비정상적 공항 운영은 미국 캐나다 등 미주지역도 비슷하다.
지난달 25일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을 보러 외국계 항공편으로 토론토국제공항에 도착한 B씨(60)는 황당한 사건을 경험했다. 다행히 짐은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토론토공항에서 미국행으로 환승하려고 했던 항공편이 취소된 것. B씨 가족은 24시간 후에 대체 항공편을 기다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항터미널에서 노숙해야 했다. 그는 ”그날 저녁 여객들이 알아서 숙박업소를 찾아 이용하고 나중에 청구하라는 항공사 측의 통보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후 늦게 배정된 항공기는 목적지 보스턴까지 가는 과정에 경유 지역이 새롭게 늘어나는 등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노선이었다. 그는 토론토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국경을 넘어와 다시 렌터카를 이용해 밤새 운전 끝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 이들은 예정 일정보다 이틀이나 늦게 도착해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보상받기 위해 항공사에 피해구제 신청을 하기로 했다.
외국계 항공사 관계자는 “환승 비행편이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입국서류 확인 등으로 경유 공항에서 연이어 지연돼 아예 취소된 경우가 있다“며 ”여객들이 불편했거나 피해를 본 사항을 신청하면 보상해주는 구제 관련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공항에서 짐 분실과 항공편 취소 등 항공대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 반해 공항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수하물 처리는 대부분 근로자의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어서 인력 채용이 절실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 동안 계속되면서 공항을 떠났던 인력들이 100%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공항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에 떠난 인력들은 감염병 사태가 또 재연되면 떠날 수밖에 없는 공항을 불안한 직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사태로 2년 이상 해외로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보복 여행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가, 오랜만에 학교나 근무지로 돌아가는 유학생·주재원 등의 짐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2배가량 많아진 것도 수하물 처리에 지장을 주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세계 주요 공항이 항공사에 비행기 운항편 수 축소를 요청하고 있지만 몰려드는 여행객의 수요를 당분간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하물 분실과 지연 도착, 항공편 결항 등에 따른 차선책을 준비하고 해외여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강준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