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업계 대기업 A사는 최근 해외 출장을 앞둔 임직원들에게 긴급 지침을 내렸다. 업무에 필요한 중요한 서류 및 귀중품 등은 수하물에 넣지 말고 반드시 기내로 들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A사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공항에서 수하물 분실과 연착 등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미국과 유럽의 주요 공항이 항공편 결항과 연착 및 수하물 분실로 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각 공항과 항공사들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인력을 대폭 감축한 와중에 최근 출장·여행 등 항공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항이 사실상 마비됐다. 해외 출장에 나선 국내 기업인들도 ‘공항대란’ 여파로 현지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예매 전면 중단된 런던 노선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9월 11일까지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인천으로 오는 항공편 예매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공항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이때까지 좌석 판매를 중단해 달라는 히스로공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히스로공항은 현 인력 수준으로는 정상적인 공항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 외 다른 항공사들도 히스로공항의 협조 요청을 수용해 런던 항공편 예약을 취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인천~런던 항공편을 주 5회 운항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예매 승객 외 추가 신규 예매는 9월 11일까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도 런던 히스로공항 측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요청을 받아 다음달 7일까지 런던발 항공편 예매를 중단했다. 예매 재개 여부는 현지 상황을 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각 공항과 항공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항공 여행이 중단되자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유럽 주요 공항과 항공사에서만 60만 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들어 여행 수요가 점차 회복되면서 인력 채용을 재개하고 있지만 현업에 투입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공항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지난달 히스로공항 여객 수는 599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669만 명)에 근접하고 있다. 히스로공항은 9월 11일까지 월 이용객이 지금의 절반 수준(300만 명) 이하로 줄어야 공항 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른 공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히스로공항과 함께 유럽의 허브공항인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의 지난달 여객 수는 499만 명으로, 2019년 12월(462만 명)을 추월했다. 프랑스 샤를드골공항 이용객도 545만 명으로, 코로나19 직전 수치(578만 명)를 거의 회복했다.

하루에만 수천 개 짐 분실

공항의 인력 부족 사태는 항공편의 잇따른 결항 및 연착을 초래하고 있다. 항공정보업체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유럽 주요 공항의 항공편 지연율은 40% 이상이다.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공항의 지연율은 50%를 넘었다.

수하물 분실도 속출하고 있다. 국내 공항과 달리 유럽 상당수 공항은 수하물 처리시스템 노후화 등으로 근로자의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허브공항 중 하나인 네덜란드 스히폴공항은 지난 20일 하루 동안 수천 개의 승객 수하물이 공항에서 분실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히스로공항과 샤를드골공항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해외 공항에서 수하물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용객에게 공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인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런던에 지점을 둔 B은행 관계자는 “평소 한 시간이면 충분한 유럽 역내 항공편 수속도 세 시간 넘게 걸리면서 출장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요 국내 기업은 해외 출장을 앞둔 임직원들에게 미국 및 유럽 현지에서 불가피하게 환승 항공편을 이용할 경우 결항 및 연착 등의 상황을 감안해 하루 정도 여유를 두고 일정을 짜라고 권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인천=강준완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