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태홍입니다' 출간
국가 폭력에 희생된 재일교포 무기수의 옥중수기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언어 문제로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한 부모님은 일본어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모국어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자랐다.

1977년 문교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5년간 국내 명문대학에서 공부했다.

야간학교를 다니며 주경야독했던 고교 때에 비하면 행복한 시절이었다.

장학금 전액과 생활비의 절반이 지급됐기에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졸업을 앞두고는 현대그룹 취직 안내서도 받았다.

순탄한 인생이 그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1981년 9월 9일 오후 3시께, 느닷없이 찾아온 보안사 요원들이 그의 모든 행복을 앗아갔다.

그들은 김씨를 연행하면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녀 15년이 걸렸다.

'나는 김태홍입니다'(후마니타스)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로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재일 한국인 김태홍 씨의 옥중 생활을 기록한 수기다.

1981년 9월9일부터, 가석방된 1996년 8월15일까지 약 15년, 5천455일 동안 이어진 감옥생활을 담았다.

보안사에 연행된 초기, 그는 독재 정권을 다룬 드라마에서 볼 법한 극악한 고문에 시달렸다.

엿새 동안 한잠도 자지 못하고 내리 구타를 당했다.

조선총련과 관계가 있고, 북한에 간 가족을 둔 김씨는 보안사의 손쉬운 공작대상이었다.

조사관들은 김씨가 남측 정권 전복을 위한 간첩 활동과 파괴 활동을 목적으로 한국에 잠입했다는 내용의 날조된 문서를 거리낌 없이 작성했다.

재판 과정도 일사천리였다.

검찰은 보안사 조사를 바탕으로 1982년 1월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그로부터 석 달 만에 무기징역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저자는 폭 90㎝, 길이 2m 70㎝의 독방에 갇혀 지냈다.

사방이 막힌 답답한 독방 생활이 끝나자 독방보다 규모가 좀 더 큰 '중방'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창문이 두껍지 않아 겨울에는 맹추위를 견뎌야 했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부당함, 박탈된 자유, 열악한 수감 환경은 그를 지치게 했지만, 독서와 그곳에서 맺은 인간관계는 힘겨운 옥중생활의 버팀목이 됐다.

저자는 책에서 1980~1990년대 한국 사회의 풍경과 교도소 안에서 마주친 인간 군상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무협 소설 작가 박영창, 아량이 넓었던 제주도 출신 폭력배 송창림,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전 전북대 수의학과 이성희 교수 등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실렸다.

더불어 요구르트를 활용해 만든 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단식과 운동, 영어 강습 등 나름대로 알차게 보낸 '감방 생활'도 소개한다.

저자는 2012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2017년 11월 23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보안사 요원에 체포된 지 36년 2개월 만이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우리가 겪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과거에 어떤 부조리한 일이 있었는지, 국가기관이 어떻게 인권을 침해했는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며 "수기에는 내가 겪은 일도 기록했지만,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겪은 고통도 함께 썼다"고 말했다.

박수정 정리. 360쪽. 1만9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