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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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계 거목이자 정치계 원로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조 전 총리는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6·25 당시 육군 통역 장교와 육군사관학교 교관 등으로 군에 복무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도미, 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서울대 교수에 임용됐다. 서강학파, 학현학파와 함께 '조순학파'가 있을 정도로 경제학계 제자가 상당하다. 정운찬 전 총리, 좌승희 전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조순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정 전 총리와는 경제학원론을 집필했다.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알려져 있다.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이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오르기도 했다.

학계와 관료 사회에 있던 고인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서울시장 취임 전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해 취임식을 사고 현장에서 열기도 했다. 여의도 공원 조성은 그의 치적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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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통합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에 대항해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와 후보 단일화와 당 대 당 합당에 전격 합의했다. 이후 한나라당 총재 등을 역임했다. 한나라당 당명을 지은 것도 고인인 것으로 알려진다.

16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000년에는 한나라당 공천 탈락에 반발한 중진급 정치인들과 함께 민주국민당 창당했다. 민주국민당 대표에서 평당원으로 돌아간 뒤에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으며 경제계 원로 역할을 했다.

고인은 지난 2011년 그의 83세 때 이뤄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대통령이 펼치는 정치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국민에게 세일즈하는 활동을 말한다"며 "대통령은 세일즈를 하기 위해 여야 정치인은 물론 널리 국민과의 대화 채널을 열어 소통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대화 없이는 소통이 이뤄질 수 없고, 정치 없이는 국가 전략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