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81조원에 달하는 지방교육교부금(교육교부금)을 놓고 교육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유·초·중·고교 교육용으로만 쓰던 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대학)을 위해서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자,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대학들은 등록금이 14년째 동결돼 재정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하루빨리 예산을 나눠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의 밥그릇 싸움에 밀려 문제의 핵심인 ‘내국세 연동 비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7개 시·도 교육감 모두 ‘반대’

17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교육교부금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전날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내국세 수입의 20.79% 규모인 교육교부금을 앞으로 대학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밥그릇 지키기 하나 된 보수·진보 교육감…"교부금, 대학 지원 반대"
보수 성향인 하윤수 부산교육감 당선인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교육교부금 제도 개편에 반대한다”며 “유·초·중·고 교육교부금을 축소할 게 아니라 대학 재정은 따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마련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임태희 경기교육감 당선인도 “경기도는 전국 시·도 1인당 교육비 평균에 못 미치는 예산을 받고 있다”며 “교육 환경 개선이 필요한 학교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유·초·중·고 학생을 위한 교육예산을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했다.

진보 성향인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든 교육감이 초·중등 재원을 대학으로 이전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안마다 대립하던 교원단체들도 밥그릇 앞에선 한목소리를 냈다. 보수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전날 “유·초·중등 교육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고 학생이 감소해도 학교, 학급, 교원이 늘어 재정 수요는 더 많아진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교육교부금은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쓰이지 못해 문제”라고 밝혔다.

2050년엔 134조원까지 늘어

방만한 교육교부금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지난 정부 때도 계속돼왔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데, 교육교부금은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어 계속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올해 교육교부금 예산은 81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2050년엔 교육교부금이 134조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재정이 열악한 대학들은 이 예산을 나눠 쓰는 게 숙원이다. 홍원화 대학교육협의회장은 “유·초·중등교육은 교육교부금으로 안정적인 재정 마련이 가능하지만, 고등교육은 단위 사업별로 예산을 편성받고 있다”며 “지방교육교부금은 올해 25조원이 더 생겼지만, 쓸 데가 없다고 받지 않겠다고 하는 지방교육청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학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교육교부금 사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가 예산을 실제 수요와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내국세 연동제 방식은 건드리지 않고, 사용처만 확대하면서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고등교육에 예산을 배분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에서 위원회를 꾸려 교육청에 줄 돈과 대학에 줄 돈을 자체적으로 배분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제도를 바꾸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지자체와 대학, 교육청 선에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오랫동안 혼자 쓰던 돈을 대학과 나눠 쓰라는 건데 교육청이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교육감과 교원단체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별도의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마련하면 예산을 더욱 방만하게 집행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진퇴양난”이라고 덧붙였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