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이 쓴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번역 출간
'시장의 자유' 둘러싼 두 경제학자의 18년 논쟁을 돌아보다
1966년 경제학계의 오랜 난제인 '정부의 시장 개입'을 두고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새뮤얼슨과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로 평가받는 밀턴 프리드먼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격돌했다.

훗날 나란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두 천재 경제학자는 이후 18년간 이 주간지에 매주 번갈아 칼럼을 기고하며 경제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논박했다.

이들의 대결은 20세기 후반 경제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 존 M.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다수의 정치인과 학자를 분석했던 영국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은 최근 번역 출간된 '새뮤얼슨 vs 프리드먼'(부키)에서 두 학자의 학문적 대립과 우정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경제학계에서는 정부가 시장을 방치하지 않고 불황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주류 의견이었다.

케인스 이론에 정통했던 새뮤얼슨은 당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물이었다.

반면 프리드먼은 자유 시장의 힘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보수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당시 경제학계 주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는 도전자였다.

책은 우선 이들이 대립한 핵심 쟁점인 인플레이션 원인과 정부 역할에 관해 다룬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임금과 상품의 가격을 법으로 정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입법 없는 과세"라며 정부 역할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통화량을 조율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새뮤얼슨은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했다는 측면에서 프리드먼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프리드먼이 복잡한 경제 상황을 너무 단순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장의 자유' 둘러싼 두 경제학자의 18년 논쟁을 돌아보다
두 사람 사이의 이론적 논쟁은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정치인과 거리를 뒀던 새뮤얼슨과 달리 프리드먼은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은 프리드먼의 조언에 따르지 않았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지원으로 영국에서 통화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려고 시도했지만 지나친 긴축 정책으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며 실패했다.

그러나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먼의 이론은 신자유주의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이들의 논쟁은 불황기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에 관한 가치관 차이로 귀결됐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일이 매우 많다"고 했지만, 프리드먼은 자유 사회에서 정부 역할 자체를 의심하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두 사람의 학문적 견해 외에 학자로서 차이점을 분석한 부분도 흥미롭다.

저자는 글 쓰는 방법과 관련해 새뮤얼슨을 '고상한 말투를 쓰는 케인스주의의 대사제'로, 프리드먼을 '이교도를 한 명이라도 더 개종시키려 집마다 돌아다니는 자유 시장주의 전도사'로 각각 표현한다.

저자는 새뮤얼슨이 케네디 정부로부터 제안받은 요직을 거절한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던 반면 프리드먼은 닉슨이나 대처 등 정치인들을 가까이하며 현실정치에서 자신의 이론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또 두 사람의 개인사를 훑으며 유대인 가정 출생, 청소년기 대공황 경험, 시카고대 경제학 전공자 등 여러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관점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살핀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 맞닥뜨린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시장과 정부 역할에 관한 첨예한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는 지금, 두 경제학자의 이야기가 나름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가영 옮김. 552쪽. 3만 원.
'시장의 자유' 둘러싼 두 경제학자의 18년 논쟁을 돌아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