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역사 교과서에서도 유혈진압 기술 대폭 축소
홍콩 6·4톈안먼 민주화시위 촛불 꺼지나…경찰 원천 봉쇄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 하루 전날인 3일 밤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베이 거리에서 한 행위 예술가가 감자를 깎아 초 모양으로 만들었다.

라이터로 '감자 초'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는 순간 그는 체포돼 경찰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금요일 밤 인파가 북적이는 거리에서 벌어진 이 작은 소동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허용된 특별행정구 홍콩에서조차 더는 공개적으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 하루 전인 3일 밤 11시부터 5일 오전 0시 30분까지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했다.

2020년 빅토리아 파크 촛불집회를 불허했지만 4일 저녁 약 2만명(경찰 추산)이 빅토리아 파크로 모여들어 촛불을 켜자 지난해에는 아예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도심 곳곳에서 촛불을 들어 올렸다.

경찰은 올해도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하고 도심 곳곳에 경찰을 배치해 '불법 시위' 원천 봉쇄에 나섰다.

빅토리아 파크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곳이다.

홍콩 6·4톈안먼 민주화시위 촛불 꺼지나…경찰 원천 봉쇄
빅토리아 파크 주변에서 경찰은 시민들의 가방을 열고 촛불 같은 '시위용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경찰에 연행된 코즈웨이베이 거리의 행위 예술가가 '감자 초'를 만드는 연기를 한 것은 거리에서 양초 하나조차 들 수 없는 홍콩의 현실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삼엄한 경찰의 통제 속에 4일 저녁 도심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념하는 촛불이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면 '중국화'한 홍콩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촛불이 꺼지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1989년 6월 4일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 100만명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다.

중국의 일부이지만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홍콩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념하고 희생자들을 추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매해 6월 4일 많게는 수십만명이 참가한 빅토리아 파크의 촛불집회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2020년 홍콩국가보안법이 도입된 것을 계기로 '홍콩의 중국화'가 급속히 진전돼 민주 진영과 시민 사회가 사실상 궤멸하면서 홍콩에서도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공개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톈안먼 기억을 주도하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는 해산하고 여러 간부는 투옥됐다.

홍콩 시내의 톈안먼 추모관은 문을 닫았고, 대학 교정에 설치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기념물도 철거됐다.

시민사회 진영은 정부의 금지에도 2020년, 2021년 빅토리아 파크 촛불집회를 강행했지만 이로 인해 민주 진영 정치인과 활동가들은 줄줄이 체포돼 법적 처벌을 받으면서 시민사회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념할 최소한의 구심점마저 잃게 됐다.

올해는 종교적 추도까지 사라졌다.

천주교 홍콩교구는 국가보안법 위반 우려로 올해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미사를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공개적으로 기념하지 못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 역사 교육에서도 톈안먼 기술을 대폭 축소하려 하고 있다.

SCMP는 9월부터 홍콩의 중학생들이 사용할 역사 교과서 개정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전과 달리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간략히 언급했고, 홍콩에서 진행된 추도 활동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중 한 교과서에서는 톈안먼 시위를 한 단락으로만 줄여 설명했는데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