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10개국과 포괄적인 안보·경제 협정을 맺어 미국에 맞서려던 중국의 시도가 일단 좌절됐다.

30일 피지에서 열린 제2차 중국·남태평양 섬나라 10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과 참석자들은 안보 및 경제 협정(포괄적 개발 비전)을 맺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전원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회의에는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니우에, 쿡제도, 미크로네시아 등 남태평양 10개국의 외교장관들이 참석했다.

중국은 지난달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정식으로 맺은 데 이어 이번 회의를 주재하며 남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힘써 왔다. 중국이 이번에 제안한 포괄적 개발 비전 초안에는 안보 협력의 일환으로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자국의 공안을 파견해 현지 경찰을 훈련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업, 천연자원 개발, 법 집행, 사이버 보안, 해도 작성, 중국어 및 중국문화 교육기관인 공자학원 설치 등도 포함됐다. 중국은 이들 섬나라에 수백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한편 자유무역협정(FTA) 가능성 등도 시사했다.

그러나 중국이 내놓은 초안을 받아든 일부 남태평양 섬나라가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은 “태평양 지역 게임의 판도를 가장 크게 바꿀 만한 일”이라며 “어쩌면 신냉전 시대, 최악의 경우 세계대전을 일으킬 위험이 내포돼 있다”고 지적했다.

피지 주재 중국대사관의 첸보 대사는 이날 “일부 사안에서 10개국 중 일부 국가의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왕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지속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최근 남태평양은 미국, 호주 등 서방과 중국의 치열한 각축전 무대가 돼 왔다. 지난달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체결한 안보 협정에 중국의 군과 경찰을 파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서방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0~24일 한·일 순방에 나서 아시아태평양지역 동맹을 규합했다. 미국의 주도로 이 기간에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피지를 참여시키기도 했다. 호주 정부는 페니 웡 신임 외무장관을 피지로 급파하는 등 외교전에 나섰다.

비록 중국이 10개국 전부를 아우르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키리바시, 사모아 등 각 섬나라를 ‘각개격파’하며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