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10일 치솟는 물가 때문에 어려워진 서민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돼지고기 등 식품원료에 할당관세(0%)를 적용하고, 병 또는 캔으로 포장된 김치나 된장 등의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대만큼 임팩트 없다?

대책이 발표된 이후 정부 안팎에서는 "생각보다 대책이 약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첫 민생안정 대책인데 예상보다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밥상물가 안정대책들이 시행된다고 해도 해당 물품의 가격이 눈에 띄게 내려갈 것 같지도 않다는 이유다. 또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돌리는 등의 대책도 이미 시장에 알려진 상황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1%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오는 9~10월이 되면 이번 대책의 효과가 전면적으로 나타날텐데, 이 때부터 약 1년간 매월 소비자물가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0.1%포인트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책이 없었다면 4.8%였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7%로 집계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0.1%포인트라는 숫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고, 이달 상승률은 지난달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27일 "물가 상승률은 일정 기간 5%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전날 국회가 처리한 2차 추가경정예산이 물가를 0.1%포인트 올릴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추산했다. 추경으로 올려놓은 물가 상승률을 원상회복시키는 수준에 그치는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MB정부의 물가 전쟁 실패가 반면교사

그런데도 정부가 이날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유는 무엇이고, 눈에 띄는 대책이 이날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관가에선 크게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물가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경험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서민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을 별도로 선정해 관리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관련 부처는 이들 품목의 물가를 잡지 못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발언한 이후 정부가 정유사를 상대로 전쟁에 가까운 공세를 편 적도 있다.

추 부총리를 비롯한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은 이런 방식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기업과 시장 참여자들을 압박하는 방식의 물가 관리는 효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현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가진 힘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며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원칙에 따라 정부가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추 부총리의 '제 때 정책' 지론이다. 추 부총리는 최근 기재부 간부들에게 "여러 대책을 모아 한꺼번에 발표하는 관행을 없애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대책을 모아 발표하면 당장 흠 잡을 데는 없을 수 있지만, 그러는 사이 정책이 필요한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이유다. 추 부총리는 "개별 정책이라도 시장에서 필요하면 만들어서 바로 발표해야 한다"며 "백과사전식 종합대책을 만들기 위해 기다리지 말고 수시로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가 이날 대책을 공개하면서 "상황을 봐서 추가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또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도 이때문이다.

◆추경호의 '제때 정책' 지론과 여소야대 국면도 영향

세 번째는 여소야대 국면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을 대책에 넣기 쉽지 않다는 이유다. 민주당이 반대할만한 정책을 대책에 포함시켰다가 제때 실행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1주택자 종부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동시에 실행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2022년이 아닌 2020년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법이지만, 공시가격 적용 기준 변경은 법개정 사안이라 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앞서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는 1주택자에게 종부세를 부과할 때 2021년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감안하면 2021년 공시가격 적용까지는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2020년 공시가격 적용 여부는 국회 사정에 따라 장담할 수 없어서 이번 대책에 담지 않았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재부는 이 때문에 2021년 공시가격을 적용하면서 공정시장가액비율(현 100%)을 인하하는 방안을 동시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시행령으로 조절할 수 있어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종부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쓰인다. 공시가격에서 공제액을 빼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하는 방식이다. 이 비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80%에서 2019년 85%, 2020년 90%, 지난해 95%로 꾸준히 인상됐다. 올해는 100%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이밖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외부 변수 때문에 물가가 급등한 상황이라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음달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최대한 빨리 '서민대책'을 발표할 정치적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