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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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기아가 ‘국민 차’로 통하는 준중형·중형 세단을 사실상 단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아는 준중형 세단 K3(2세대) 생산을 2024년 중단할 예정이고, 현대차도 중형 세단 쏘나타의 개발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쏘나타와 같은 플랫폼을 쓰는 기아 중형 세단 K5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전기차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면서 이른바 ‘돈 안 되는’ 차량부터 생산을 멈추는 것이다. 글로벌 완성차업계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프리미엄 브랜드 등 고(高)수익 모델에 생산을 집중하며 ‘양’에서 ‘질’로 경영 전략을 바꾸고 있다.

K3·쏘나타 사실상 단종 수순

29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2024년 K3 생산을 중단하기로 하고, 이를 제작하는 화성2공장에서 전기차 EV6를 병행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후속 모델이 나오지 않으면 K3는 단종 절차를 밟게 된다. 현대차가 차세대 모델을 개발하지 않기로 하면서 쏘나타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탓에 준중형·중형 세단은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SUV 판매가 늘어나면서 세단 판매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미국 시장에서 먼저 감지된다. 현대차는 연초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쏘나타 생산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GV70 전기차, 싼타페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는 생산량을 조정하려면 노동조합과 협의해야 하지만 미국에선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 물량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쏘나타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K5도 미국 조지아 공장부터 서서히 단종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월평균 1만 대 생산되는 K5를 단종하면 잉여 생산능력을 전기차에 집중할 수 있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 전기차 대량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라며 “전기차 전용 공장이 완공되기 전에 EV9을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기아 조지아 공장은 연 38만 대 생산 규모를 갖췄으며 현재 K5, 쏘렌토, 텔루라이드, 스포티지를 제조하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미주권역담당 사장은 최근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무뇨스 사장은 “연말까지 전기차 10개 모델을 미국에 출시할 것”이라며 “수익성이 높은 데다 수요가 많은 모델을 우선 생산하는 게 제조사와 소비자 둘 다에게 좋다”고 말했다.
반도체난에 사라지는 '국민차'…K3·쏘나타 사실상 단종 수순

완성차, 영업이익률 10% 시대

글로벌 완성차업계도 저가 차량을 단종하고 이익률이 높은 차량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닛산은 최근 인도 등 10개 신흥국에서 판매하던 저가 브랜드 닷선을 수익성 문제로 단종하기로 했다.

폭스바겐그룹은 8년간 산하 브랜드의 100여 개 내연기관 모델 중 60%를 없앨 계획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A클래스 등 소형차 모델을 7개에서 4개로 줄일 방침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영업이익을 늘리려면 나무의 밑동(저가 모델)은 잘라내고 윗부분(고가 모델)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의 경영 전략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때문이다. 출고 지연과 ‘카플레이션(카+인플레이션)’에도 소비자의 계약 러시가 이어지자 조달한 반도체를 SUV, 프리미엄 차량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완성차업계의 영업이익률은 10%대로 올라섰다. 제너럴모터스(11.2%) 폭스바겐(13.3%) 등이 대표적이다. 영업이익률이 5%만 넘어도 ‘선방’했다는 기존 인식과 완전히 달라진 흐름이다.

김형규/김일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