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도 드러냈다, 모두의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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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만에 완전개방, 靑 100% 즐기기
74년 만에 완전개방, 靑 100% 즐기기
청와대는 지난 74년간 왕이 사는 궁(宮)에 가까운 존재였다. 높은 담장은 안팎을 철저히 단절시켰고, 그 앞엔 총을 든 무표정한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심심찮게 벌어지는 불심검문 때문에 주변을 마음 편히 지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반 국민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 권력의 심장부. 청와대에 구중궁궐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지난 10일 굳게 닫혔던 청와대 문이 활짝 열렸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경비단 경찰은 이제 관람객과 ‘셀카’를 찍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헬기가 착륙하던 잔디밭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긴다. 적막하던 숲길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여왕 관저인 버킹엄궁이 런던을 상징하는 명소가 된 것처럼, 청와대도 서울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탈바꿈했다. 청와대 관람 누적 신청자는 543만 명, 관람객 수 39만7723명(24일 기준)이란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23일 영빈관과 춘추관이 개방된 데 이어 26일부터 대통령이 생활하던 관저와 집무를 보던 본관 내부가 공개됐다. 파견 공무원들이 일하던 사무실인 여민관만 아직 닫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속살’을 모두 드러낸 셈이다. 일반 공개 전날 청와대 곳곳을 미리 가봤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떠올라서였을까. 방탄유리와 거대한 옷장으로 둘러싸인 청와대 관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외로웠을까.’
청와대는 한국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문화재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한 것처럼, 많이 알수록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관람 대기줄’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 청와대 곳곳에 숨겨진 뒷이야기와 ‘관람 팁’을 통해 모두의 청와대를 100%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YS 기댔던 책상, DJ 앉았던 의자…현대史 현장이 바로 여기네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공간은 모든 문명을 통틀어 ‘비밀의 성’과 같았다.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자 동시대 정치사와 생활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창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복궁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중국의 자금성 등 각국 대표 관광지가 왕의 궁전인 이유다. 하지만 이런 유명 관광지와 달리 26일 개방된 청와대 본관과 관저는 휑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임기가 끝나면 ‘방을 빼야’ 하는 청와대 특성상 역대 대통령이 남긴 집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약간의 지식과 넘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집무실 크기는 168.59㎡(약 51평)로, 소규모 회의실을 포함한 면적임을 감안해도 드넓다. 천장 높이도 3m 가까이 된다. “적막강산에 홀로 있는 느낌”(노무현 전 대통령),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이명박 전 대통령)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 옆에 달린 신라 왕이 쓰던 금관 모양의 조명부터 금빛으로 칠해진 콘센트까지, 화려하지만 다소 과한 디테일이 위용을 더한다.
‘사무실 주인’도 부담스러운데 이곳을 찾는 관료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방문에서 대통령 책상까지 거리만 15m. 대통령 뒤에는 문짝만 한 봉황 휘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책상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라는 게 공무원들 얘기다. 장관조차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방을 나가려던 장관이 아무리 가도 문이 나오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곳을 나오면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접견실이 나온다. 나무 창틀 문살은 한지로 마감했고, 동쪽 벽면은 황금색 ‘십장생 문양도’로 장식해 한국적 미감을 살렸다. 1층으로 내려가면 무궁화실. 영부인의 집무를 위한 책상과 접견을 위한 소파 등이 있고, 벽에는 역대 영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본관 관람을 마치고 10분 정도 오르막길을 가면 대통령이 거처하던 관저가 나온다. 관저 내부는 이사 직후 집이라 어수선한 모습이 그대로다. 세간살이는 대부분 빠졌고, 소파와 TV 등 일부 집기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이 내부 개방을 보류하고 창문을 통해서만 거실과 침실 등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이유다.
관저는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대통령 가족만 쓰는 왼쪽과 직원들도 접근할 수 있는 오른쪽으로 나뉜다. 관람객들은 가장 오른쪽 방인 대식당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대통령이 초대한 손님들과 식사하는 공간이다. 의자와 원탁은 모두 해체된 상태이지만, 멀리 안쪽으로 와인냉장고와 찬장이 보인다. 찬장 안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접시와 컵 등은 이우환 화백과 박영숙 도예가의 컬래버레이션 도자기다.
소파와 테이블 등이 놓인 접견실을 지나면 현관을 통해 허달재 화백의 ‘매화’ 그림이 나온다. 현관 왼쪽 방들에 있는 가전제품 브랜드 대부분은 LG로, 오른쪽 방들에서는 삼성 제품이 주를 이루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실에서는 TV와 소파, 벽난로 시설 등이 눈에 띈다. 한쪽에는 삼익악기에서 만든 낡은 피아노가 놓여 있다.
침실은 넓이가 80평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0평 남짓이다. 다만 침대를 비롯한 집기가 전혀 놓여 있지 않아 썰렁한 인상을 준다. 침실 안보다는 침실 반대편 대통령이 내다봤을 도심 풍경과 두꺼운 방탄유리가 인상적이다. 양문형 옷장만 17개에 달하는 옷방, 작은 사우나 두 곳이 주목할 만하다. 이발실과 당직실, 주방을 거치면 관람이 끝난다.
성수영 기자/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syoung@hankyung.com
지난 10일 굳게 닫혔던 청와대 문이 활짝 열렸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경비단 경찰은 이제 관람객과 ‘셀카’를 찍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헬기가 착륙하던 잔디밭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긴다. 적막하던 숲길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여왕 관저인 버킹엄궁이 런던을 상징하는 명소가 된 것처럼, 청와대도 서울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탈바꿈했다. 청와대 관람 누적 신청자는 543만 명, 관람객 수 39만7723명(24일 기준)이란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23일 영빈관과 춘추관이 개방된 데 이어 26일부터 대통령이 생활하던 관저와 집무를 보던 본관 내부가 공개됐다. 파견 공무원들이 일하던 사무실인 여민관만 아직 닫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속살’을 모두 드러낸 셈이다. 일반 공개 전날 청와대 곳곳을 미리 가봤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떠올라서였을까. 방탄유리와 거대한 옷장으로 둘러싸인 청와대 관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외로웠을까.’
청와대는 한국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문화재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한 것처럼, 많이 알수록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관람 대기줄’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 청와대 곳곳에 숨겨진 뒷이야기와 ‘관람 팁’을 통해 모두의 청와대를 100%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YS 기댔던 책상, DJ 앉았던 의자…현대史 현장이 바로 여기네
청와대 본관·관저 내부 들여다보니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공간은 모든 문명을 통틀어 ‘비밀의 성’과 같았다. 대중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자 동시대 정치사와 생활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창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복궁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중국의 자금성 등 각국 대표 관광지가 왕의 궁전인 이유다. 하지만 이런 유명 관광지와 달리 26일 개방된 청와대 본관과 관저는 휑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임기가 끝나면 ‘방을 빼야’ 하는 청와대 특성상 역대 대통령이 남긴 집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약간의 지식과 넘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YS도 놀랐다, 광활한 본관
청와대 본관은 광활하다. 15만 장의 푸른 기와로 지붕을 덮은 본관은 청와대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대통령이 일하는 공간. 지금의 건물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 완공됐다. 본관 내부 넓이는 2761㎡. 1993년 청와대 본관에 처음 발을 디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그 넓이에 당황해 “사무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을 정도다. 1층 현관으로 입장해 오른쪽 충무실(다용도 공간)과 인왕실(연회장)을 둘러본 뒤 ‘레드 카펫’이 깔린 중앙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대통령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을 만난다. 그 후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무궁화실(영부인 집무실)을 보고 퇴장하는 코스다. 이 중 충무실과 인왕실은 볼 게 많지 않다. 샹들리에 조명 등 특이한 건물 내장 일부를 제외하면 인왕실에 걸린 전혁림의 2006년작 ‘통영항’이 유일한 볼거리다. 핵심 볼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부터 시작된다. 주요 방문자들이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소라 관람객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한반도 모양을 그린 김식의 ‘금수강산도’ 아래로 펼쳐진 레드 카펫이 다소 투박하지만 장엄한 인상을 준다. 계단을 오를 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자.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져 있다.○장관님도 뒷걸음질 치다 ‘쿵’
역대 대통령 기록 사진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게 본관 대통령 집무실 책상 의자에서 대통령이 일하는 장면이다. 책상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특징이 드러나기도 한다. 소탈한 성품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책상에 걸터앉아 참모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진을 남겼고, 독서가로 유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책을 읽는 모습이 남아 있다.집무실 크기는 168.59㎡(약 51평)로, 소규모 회의실을 포함한 면적임을 감안해도 드넓다. 천장 높이도 3m 가까이 된다. “적막강산에 홀로 있는 느낌”(노무현 전 대통령),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이명박 전 대통령)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 옆에 달린 신라 왕이 쓰던 금관 모양의 조명부터 금빛으로 칠해진 콘센트까지, 화려하지만 다소 과한 디테일이 위용을 더한다.
‘사무실 주인’도 부담스러운데 이곳을 찾는 관료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방문에서 대통령 책상까지 거리만 15m. 대통령 뒤에는 문짝만 한 봉황 휘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책상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라는 게 공무원들 얘기다. 장관조차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질로 방을 나가려던 장관이 아무리 가도 문이 나오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곳을 나오면 대통령과 외빈이 만나는 접견실이 나온다. 나무 창틀 문살은 한지로 마감했고, 동쪽 벽면은 황금색 ‘십장생 문양도’로 장식해 한국적 미감을 살렸다. 1층으로 내려가면 무궁화실. 영부인의 집무를 위한 책상과 접견을 위한 소파 등이 있고, 벽에는 역대 영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관저 가전제품은 ‘右삼성 左LG’
본관 관람을 마치고 10분 정도 오르막길을 가면 대통령이 거처하던 관저가 나온다. 관저 내부는 이사 직후 집이라 어수선한 모습이 그대로다. 세간살이는 대부분 빠졌고, 소파와 TV 등 일부 집기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이 내부 개방을 보류하고 창문을 통해서만 거실과 침실 등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이유다.
관저는 중앙 현관을 기준으로 대통령 가족만 쓰는 왼쪽과 직원들도 접근할 수 있는 오른쪽으로 나뉜다. 관람객들은 가장 오른쪽 방인 대식당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대통령이 초대한 손님들과 식사하는 공간이다. 의자와 원탁은 모두 해체된 상태이지만, 멀리 안쪽으로 와인냉장고와 찬장이 보인다. 찬장 안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접시와 컵 등은 이우환 화백과 박영숙 도예가의 컬래버레이션 도자기다.
소파와 테이블 등이 놓인 접견실을 지나면 현관을 통해 허달재 화백의 ‘매화’ 그림이 나온다. 현관 왼쪽 방들에 있는 가전제품 브랜드 대부분은 LG로, 오른쪽 방들에서는 삼성 제품이 주를 이루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실에서는 TV와 소파, 벽난로 시설 등이 눈에 띈다. 한쪽에는 삼익악기에서 만든 낡은 피아노가 놓여 있다.
침실은 넓이가 80평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0평 남짓이다. 다만 침대를 비롯한 집기가 전혀 놓여 있지 않아 썰렁한 인상을 준다. 침실 안보다는 침실 반대편 대통령이 내다봤을 도심 풍경과 두꺼운 방탄유리가 인상적이다. 양문형 옷장만 17개에 달하는 옷방, 작은 사우나 두 곳이 주목할 만하다. 이발실과 당직실, 주방을 거치면 관람이 끝난다.
성수영 기자/사진=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syoung@hankyung.com